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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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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전통 사찰 이야기 (6) 창원 의림사

임진왜란 의병 충절 어린 호국도량
마산 진북면 여항산 기슭에 자리

  • 기사입력 : 2013-04-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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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여항산 기슭에 자리한 의림사. 나한전과 염불전 앞에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삼층석탑은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돼 있다.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250년 된 모과나무.
    대웅전 옆 법고가 걸린 종각.
    마산 9경 중의 하나인 의림사 계곡.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진북마을에서 6㎞ 정도 가면 ‘여항산 의림사’라는 글귀가 새겨진 돌비석이 나타난다. 이어 차 한 대가 지나도록 포장된 도로 양편에 벚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린 채 줄지어 서 있다.

    그 끝에 일주문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다른 절에 비해 규모가 큰 편이다. 아직 공사 중인듯 줄을 쳐 통행을 차단해 놓았다. 일주문 옆을 지나 다리를 건너니 2층짜리 누각이 보인다.

    종무소로 쓰이는 누각 2층 처마 밑에 ‘여항산 의림사’란 현판이 걸려 있다. 원래 이 누각 아래층에 가운데 문이 출입문이었으나 지금은 막아 놓아 누각 우측 계단을 통해 절로 들어가야 한다.

    계단을 올라서니 넓은 마당이 나오고 그 주변으로 전각들이 배치돼 있다. 아늑하고 평온한 느낌의 경내에는 봄 기운이 완연하다.

    입구에서 보니 전각 3동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부터 나한전, 염불전(念佛殿), 큰스님의 거처인 선열당이다.

    염불전은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의 규모로 1960년대에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최근에 만든 금동 석가삼존불좌상과 관음보살, 그리고 후불탱과 지장탱·신중탱 등이 봉안돼 있다.

    나한전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염불전과 같은 시기에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석가여래삼존좌상과 500나한이 봉안돼 있다.

    나한전과 염불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전체 높이는 3m로 이중기단(二重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 그리고 상륜부(相輪部)를 지녔다. 상·하 기단면석(基壇面石)에는 우주(宇宙)와 탱주를 양각했고, 탑신에는 우주만 새겼다. 옥개받침은 5단이고 옥개석 처마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다가 처마 끝에서 살짝 위로 치솟았다. 상륜부는 노반(路盤)만이 남아 있으며 보주(寶珠)는 후대에 추가했다. 전반적으로 통일신라 석탑의 간결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1974년 요사(寮舍) 앞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우면서 일부 보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됐다.

    절 오른편엔 최근에 단청을 해 깔끔한 모습의 대웅전이 우뚝 서 있다. 팔작지붕에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의 전각으로 1997년에 지었다. 법당 내부에는 금동으로 조성한 석가여래좌상, 관음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의 삼존상이 봉안돼 있다. 탱화로는 후불탱과 신중탱이 있다.

    마당 안쪽으로 들어가니 염불전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삼성각이 눈에 띈다. 삼성각은 맞배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1칸씩의 규모다. 법당 내부에는 1962년에 조성한 칠성탱을 비롯해 산신탱과 근대 조성된 독성탱이 봉안돼 있다.

    삼성각 옆에 있는 모과나무는 수령이 약 250년 된 귀중한 나무로 1985년 경상남도 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됐다. 키가 10m에 달하며, 수관폭(樹冠幅)은 동서쪽과 남북쪽으로 각각 15m 내외로 퍼져 있다. 장미과에 딸린 낙엽교목으로 나무껍질이 해마다 벗겨지고 줄기에 녹갈색의 구름무늬가 있다. 모과나무의 열매는 차(茶), 술(酒), 정과(正果) 등을 담그기도 하고, 기관지·천식 등의 약재로도 쓰이며 향기가 멀리 퍼져 실내에 놓아두기도 한다.

    이 모과나무는 예로부터 의림사를 찾는 많은 신도들의 신앙대상이 되었으며, 현재에도 찾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웅전 옆에는 커다란 법고가 걸린 종각이 있다.

    유려한 여항산 수리봉 동남쪽 겹겹의 골짜기를 따라 정적 속에 앉아 있는 의림사는 삼국통일 직후인 신라 31대 신문왕 당시(688년)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의상대사가 화엄10찰의 창건을 마친 후 화엄도량으로 창건했다. 화엄도량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여항산이라는 산명에서 알 수 있다. 여항산의 여항은 불교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배’라는 뜻으로 화엄의 배에 중생들을 태우고 구제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 화엄도량의 의미와 맞물린다.

    창건 때 사명은 봉국사(奉國寺)로 삼국통일 이후 빈번해진 왜구의 약탈 행위를 부처님의 크신 원력으로 물리치고 나라를 받든다는 뜻이다. 창건 당시 사세는 건물 30동이 넘는 거찰이었다고 한다.

    봉국사란 사명으로 법등을 밝혀오다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이곳에 머물며 승병을 훈련시키자 인근 각처에서 의병들이 숲처럼 많이 모여들었다고 해서 ‘의림사(義林寺)’로 사명을 고쳤다고 전한다. 사명에서도 알 수 있듯 1500명가량 되는 승군을 훈련시켜 동래성, 진주성 등으로 파견한 호국도량 호국성지로서의 기능을 했다.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서울대 규장각에 보존돼 있는 채색지도 필사본인 의림사 도형(義林寺 圖形)을 보면 21동과 7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어 대찰로 번창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의림사는 호국도량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해오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여항산 전투로 많은 피해를 입어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다.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은 1974년 창도 큰스님의 부임으로 본격화돼 2007년 경선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후 석축과 하천축대 쌓기 등의 주변정비를 비롯한 선열당 보수, 일주문·종각 조성 등 불사에 힘써 역사와 전통에 걸맞은 전통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마산 9경 중의 하나인 절 앞의 계곡은 인성산에서 발원하는 울창한 천연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깊고 맑은 물이 일년 내내 끊이지 않는 천연계곡으로 보존가치가 높아 의림사를 아름다운 도량으로 돋보이게 한다.

    글= 양영석 기자·사진= 전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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