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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2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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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 함안 에코싱싱로드(둑방길)

경남의 길을 걷다 (35) 함안 에코싱싱로드(둑방길)
둑방길 따라 아름다운 시골 풍경 펼쳐지고
발길 닿는 곳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 되네

  • 기사입력 : 2011-10-1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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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 에코싱싱로드에 세워진 솟대 너머로 펼쳐진 황금들녘이 깊어가는 가을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본격적으로 길을 걷기 전 맛보기 질문 하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둑은 어디일까? 아마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놀랍게도 전국 최장 둑은 도내에 있다. 영남의 젖줄인 남강과 함안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점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둑. 바로 함안군 가야읍을 비롯해 법수면, 대산면, 칠서면에 접하고 있는 338㎞의 함안 악양둑방이다.


    ▲둑방 위를 걷는 길, 에코싱싱로드

    악양둑방은 매년 범람하는 남강물로부터 농경지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인공 제방이다. 이 제방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현재의 길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저 물막이의 역할만 했던 악양둑방 위를 깨끗하게 정비해 사람들이 편하게 걸을 수 있게 만든 길이 바로 에코싱싱로드다. 둑으로 난 길은 폭신한 황톳길이며 반환점을 돌아 남강변으로 내려가면 흙길이 이어진다. ‘에코싱싱(ecosingsing)’은 살아 있는 자연환경의 생태를 뜻하는 ‘에콜로지(Ecology)’와 싱그러운 자연, 싱그러운 바람, 싱싱 달리는 의미의 싱싱을 덧붙인 것이다. 자연 속에서 새가 노래한다는 ‘싱(Sing)’을 영문 형태 ‘싱싱(Singsing)’으로 바꾸어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 2009년 전국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에서 선정된 이름이라고 하는데, 끊임없이 지저귀는 새들과 둑 위에 설치된 거대한 바람개비를 돌리는 가을바람, 자전거를 타기에도 불편함이 전혀 없는 평탄한 길 모두가 잘 들어맞는 이름이라 느껴진다.



    ▲둑 위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광

    에코싱싱로드는 남해고속도로에서 함안IC에 내려 법수방향 길 끝 삼거리에서 악양마을 간판이 가리키는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바로 만날 수 있다. 내비게이션에 ‘함안군 법수면 윤내리 121-12번지’를 입력하면 길의 시작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대가 서서히 높아지며 둑 위로 이어지는 도로에 올라섰다면 함안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악양교)를 건너지 말고 왼쪽으로 뻗은 둑방길로 들어서야 한다. 둑을 기점으로 오른편으로는 멀리 함안천과 남강이 만나는 물목이 반짝이고, 왼편으로는 너른 들판에 자란 벼들이 샛노란 물결을 이룬다. 길 아래로 펼쳐진 풀을 뜯는 소의 모습과 깨를 타작하거나 밭을 가는 농부들의 분주한 모습, 찬바람을 맞아 더욱 푸르게 피어나는 배추밭의 싱그러움이 둑 위를 걷는 내내 양옆을 지킨다. 두 눈에 가득 들어오는 풍광은 서늘한 그늘을 드리운 슬레이트 지붕에 저녁 무렵 소죽을 끓이는 연기까지 볼 수 있는 한적한 농촌의 모습, 그 자체다.



    에코싱싱로드에 설치된 바람개비와 풍차가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따라 돌아가고 있다.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만한 장소

    에코싱싱로드의 길이는 약 5㎞. 사진도 찍고 쉬기도 하면서 여유롭게 걸으면 2시간 반 정도면 다 걸을 수 있다. 악양교 근처의 둑길부터 시작해 법수면 주물리가 나오는 갈림길에서 남강변으로 내려가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순환코스다. 2.5㎞ 정도 계속되는 둑 위 황톳길은 특별한 사진 기술이 없다 해도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만한 장면을 연출해 준다. 관리사무소인 풍차, 솟대길, 일곱 빛깔 무지개 색을 입힌 커다란 바람개비와 간간이 만나게 되는 원두막 쉼터가 아름다운 배경을 연출하기 때문. 뿐만 아니라 봄에는 유채꽃과 개양귀비, 가을엔 코스모스가 둑길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탐방팀이 에코싱싱로드를 방문한 날엔 하나둘 지기 시작한 코스모스를 베고 내년 봄 만개할 개양귀비 꽃을 파종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대신 미처 베지 못한 코스모스 몇 송이와 구절초, 터질 듯 부풀어오른 꽃망울의 국화가 탐방팀을 반겼다. 그리고 또 하나, 에코싱싱로드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이색풍경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둑길과 남강변의 흙길 사이에 펼쳐진 경비행기 비행장이다. 둑방 아래 정주해 있는 경비행기의 모습이나 수시로 10월의 푸른 하늘을 향해 뜨고 내리는 경비행기의 저공비행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 될 듯하다.


     
     

    ▲남강변으로 내려오면

    둑 위의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했다면 남강변으로 내려가 자연 그대로 보존된 강변의 속살을 감상하자. 강변에 이어지는 길을 따라 여름엔 수련과 갯버들, 겨울엔 억새가 우거진다. 특히 둑방 아래 둔치와 남강 사이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갯버들 숲길이 일품이다. 빼곡한 갯버들 사이 일부 구간에는 나무테크로 만든 길과 사람이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난 길이 이어진다. 간간이 모래밭에 물이 들어와 조그만 호수를 만든 곳도 있다. 10월 중순을 향해 가는데 아직까지도 호수에는 수련이 자라고 있다. 갯버들은 이른 봄에 물이 올라 어린 가지가 연한 초록색을 띠면 유난히 꽃눈이 하얗게 보여 버들강아지라고도 부른다. 개울가에 자라며 아름답고 물에 강해 하천 정화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높이 자란 갯버들 군락지는 각종 생물과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며 억새가 자라나고 자운영이 피어나는 여름에 그 정취가 더욱 좋다.



    남강변을 따라 이어진 둑방 아래 둔치에 농민들이 파종을 위해 만든 고랑이 질서정연하게 펼쳐져 있다. 기울어지는 해가 고랑에 그림자를 놓은 둔치를 한 시민이 걷고 있다.


    ▲가지런한 가르마 지형과 모래톱

    둑길, 농경지, 흙길, 모래사장, 남강, 모래톱으로 교차되는 에코싱싱로드의 단면. 마치 가지런하고 정갈하게 타 놓은 가르마를 보는 듯하다. 비행장을 가운데 두고 그 단면을 단번에 가로지르는 지름길도 있으니 길을 다 걸을 만한 여유가 없다면 그 길을 이용해도 좋다. 잘 갈아 놓은 밭의 고랑과 이랑이 석양과 이루는 음영은 이국적 정취를 물씬 풍긴다. 남강변 흙길에서 만나게 되는 갯버들과 억새 사이로 보이는 모래톱도 가을 정취를 더하는 요소다. 저마다의 추억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젖은 모래밭을 꾹꾹 밟고 지나간 듯한 모양, 잔잔하지만 수천 번의 끈덕진 물의 움직임이 각인되어 있는 그 모래톱 위의 문양이 아름답다.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는 물목에 자리한 악양루. 앞으로는 너른 들과 강이 보이고 뒤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다.


    ▲남강과 함안천의 물목에서 만나는 악양루

    길을 다 걸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면 악양교를 건너 함안천을 넘어가 보자. 다리 너머,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는 물목이 자리한 절벽에 되똑 서 있는 악양루, 그곳을 둘러볼 차례다. 지방도에서 50m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절벽 위에 악양루가 서 있다. 이때 급커브를 그린 도로를 차들이 부주의하게 쌩쌩 달려오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악양루는 1857년(철종 8년)에 건립된 누각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이고 있다.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중국 악양도 함안 악양루처럼 앞으로 너른 들과 강이 보이고 뒤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묵직하게 서 있다고 한다. 중간에 소실된 것을 한국전쟁 이후에 복원했다. 지금은 청남(菁南) 오제봉(吳濟峯)이 쓴 ‘악양루(岳陽樓)’라는 현판만 남아 있다. 누각에 올라 강쪽을 바라보면 서쪽으로 자굴산, 한우산, 좌측으로 여항산,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산맥과 에코싱싱로드가 한눈에 보인다. 해거름에는 남강 아래로 붉은 해가 들판과 강물을 태우며 시나브로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


    ▲처녀뱃사공 노래비

    악양루로 가는 도로변에서는 남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한 여인을 만날 수 있다. 바로 국민가요 ‘처녀뱃사공’의 발원지를 알리기 위해 지난 2000년에 세워진 처녀뱃사공 노래비.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에 스치면/ 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에 앞가슴을 헤치면/ 고요한 처녀가슴 물결이 이네/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 보내마/ 어머님 그 말씀이 수줍어질 때/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황정자가 불러 1975년 최고의 인기를 끈 노래 ‘처녀뱃사공’에는 악양루 근처에 얽힌 슬픈 사연이 녹아 있다. 한국전쟁이 막 끝난 1953년 9월 유랑극단 단장인 윤부길(가수 윤항기, 윤복희의 부친)씨가 함안 가야정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산장으로 가던 중 악양루 근처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법수면과 대산면을 잇는 악양 나루터에 노를 젓는 처녀뱃사공을 보았고 그 슬픈 사연을 듣게 된다. 당시 23세 박말순과 18세 박정숙 두 처녀가 군에 가 소식이 끊긴 오빠 박기준을 대신해 길손을 넘겨주면서 오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것. 이후 윤부길 선생이 이 이야기를 토대로 가사를 쓰고 한복남 선생에게 곡을 의뢰해 ‘처녀뱃사공’이라는 명곡이 탄생한다. 이에 함안군은 전국의 가수지망생이 참가하는 처녀뱃사공가요제를 해마다 열어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키우고 있다.


    글= 김유경기자 bora@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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