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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2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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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57) 황강 5- 거창군 마리면~거창읍 양평리

정자·불상·돌다리·장터… 곳곳에 ‘세월의 흔적’

  • 기사입력 : 2010-12-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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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58년 오수선생 후손 오성재·성화 형제가 쌀 천 섬을 내어 인부들을 사서 놓은 ‘쌀다리’.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매년 이맘때면

    만나고 헤어졌던 수많은 인연을 생각하게 된다.

    김현태 시인은- ‘인연이란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꽃처럼 하이얀 가루가 될 즈음,

    그때서야 한번 찾아오는 것이라고….(중략)’

    여행을 하면서 만난 인연은 바람처럼 가벼운 것이기도 하고

    물처럼 유유히 흐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산처럼 무겁기도 하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이며

    어제를 알고 오늘을 알고 내일을 알아가는 것이다.

    여행길에서 만난 인연은 세월이 흘러도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진다.

    ◇ 용원정·쌀다리

    위천천을 지척에 두고 있는 거창군 마리면으로 겨울 기행을 떠났다. 우리 땅을 찾아가는 여정은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다. 거창에서 교직생활 내내 아이들 교육을 하고 있는 마리초등학교 정시균(56) 교감 선생님과는 문화재로 인연을 맺었다. 몇 년 전에 문화재청 한문화재 지킴이 운동을 하면서 세계문화유산 제주도 연수를 가서 2박3일 동안 방을 함께 썼던 인연이 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세월이 흘러가도 안부를 주고받으며 죽마고우 같은 인연을 이어 왔다.

    덕유산에서 흘러내려온 위천천을 잠시 비켜 마리초등학교가 빤히 보이는 삼거리에서 국도 3번을 따라 함양군 안의면 방향으로 향했다. 약 2.3km 가면 마리면 고학리 느티나무 아래 한가로운 모습으로 서있는 용원정과 쌀다리가 있다. 가야시대에 마리면의 마리는 머리의 뜻이었으니 부족장이 살았다는 의미가 있고 마을 뒤편 기백산 준령의 능선이 크고 재가 중첩되어 두텁다는 뜻에서 ‘고’ 자를 따고 마을의 생긴 모양이 학이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학’자를 따왔다고 한다. 마을 이름의 유래에서 보듯이 예사 마을이 아니다. 첩첩산중 계곡 물이 모여 마을을 통해 황강의 지류 위천천으로 이어진다.

    고학리 병항마을은 약 400년 전 해주 오씨들이 터를 잡아 마을이 열리게 되었다. 용원정은 3번 국도에서 50m 정도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오래된 느티나무에 가려진 곳에 1964년 후손들이 조상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세웠다고 한다. 정자는 팔작지붕에 용이 꿈틀거리는 천장 연화문 단청이 매우 곱다. 사방에 그려진 도깨비 얼굴도 웃고 있어 불교와 유교 의미를 함께 지니면서도 원래의 토속적인 멋을 엿볼 수 있다. 정자로 오는 개울 위에 두 개의 넓적한 돌을 연결해 놓은 다리가 있는데 ‘쌀다리’라고 부른다.

    옛날 한양으로 통하는 삼남대로 였던 이곳에 다리가 없어 길손들의 불편함이 여간 아니었다. 오수선생 후손 오성재, 성화 형제가 1758년 쌀 천 섬을 내어 인부들을 사서 놓은 다리라 하여 붙여졌다. 이곳을 지나는 길손들은 쌀다리를 밟고 가면서 경치에 반해 용원정에서 잠시 쉬어갔을 것이다.

    ◇ 거창5일장·양평동석조여래입상

    용원정을 뒤로 하고 3번 국도를 따라 거창읍 방향으로 약 8km쯤 가면 계곡 건너편에 건계정이 있고, 700m쯤 거리에 짙푸른 소가 있어 그 주변에 있는 바위를 용암이라 불렀는데 보를 막아버려 찾기가 쉽지 않았다. 거창읍내로 들어서면 위천천이 영호강으로 이름을 바꾼 강을 건너서 봄이면 길가에 꽃이 피는 좁은 길을 따라 100m쯤 가면 보물 제378호로 거창상림리보살입상이 반겨준다. 높이 3.5m의 거대한 관음보살상으로 연꽃이 새겨진 8각의 받침대 위에 서 있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이 솟아 있으며, 모자는 없어진 상태이다. 양감이 줄어든 얼굴에는 작고 가는 눈, 다문 입이 표현되어서 다소 엄숙한 모습이다. 어깨는 각이 져 있으며, 신체는 장방형으로 보살상 특유의 유연성은 부족해 보인다. 오른손은 몸에 붙여 깨끗한 물이나 감로수를 담는 정병을 들고 있고, 왼손은 가슴에 대어 연꽃을 쥐고 있다.

    거창지역에 있는 가섭사지 마애불상이나 상림리 보살입상을 보면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 할 만큼 못난이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의 지역성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석불입상에 이끼가 끼어 있었는데, 지금은 새 옷을 갈아입은 듯 화강석 특유의 색상이 잘 나타나 있다. 불상 주변은 항상 깨끗하다. 인근에 살고 있는 윤우제하(74)씨가 40여 년 동안 불상 주변에 나무를 심고, 청소를 하며 보살펴 왔다. 문화재 지킴이 운동이 소리 없이 잘되고 있었다. 불상 주변이 깨끗하지 않고 잡초가 자라면 마음이 개운치 않다고 하니, 불상과 윤 할아버지는 불가에서 말하는 깊은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겨울 해는 짧았다. 바쁜 걸음으로 거창 읍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을 건너 거창읍 김천리 261-5 거창박물관을 찾아갔다. 항상 문화유산의 답사는 박물관이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 마다 말한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데는 박물관이 으뜸이다. 거창박물관은 한옥 구조의 2층 건물로 1, 2층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별관과 야외전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창문화원 사무국장 백승용씨에 의하면 박물관을 만들게 된 배경이 특이하다.

    거창 사람 최남식, 김태순씨가 평생 수집한 귀중한 문화재를 기증하고 건립운동에 앞장서 1988년 5월 20일 거창유물전시관을 개관하였다. 유물의 수는 1200여 점이며, 대동여지도(유형문화재 제275호), 송림사지 석조여래좌상(유형문화재 제311호), 정온선생 관복(중요민속자료 제218호) 문화재가 있다. 영구 폐쇄된 둔마리 고분벽화 모형을 만들어 지역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 상림리보살입상·거창박물관

    1일과 6일은 거창장이 서는 날이다. 서민들의 사람 냄새가 나고 정이 넘치는 곳은 5일장이다. 이제는 슈퍼마켓이니 무슨 마트니 하는 외래어 이름을 붙인 상점들 때문에 설자리를 잃고 있지만 그래도 구수한 사투리에 마음까지도 푸근해지는 곳이다. 거창 오일장은 거창읍을 흐르는 영호강 둔치를 따라 장이 펼쳐진다.

    옛날부터 서부경남 지역의 장꾼들이 각종 농산물과 과일을 사고팔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곳이다. 장터로 들어서면 소박한 상점 이름과 손수 가꾼 채소를 조금씩 진열한 할머니들의 노점상들이 줄지어 가득 다가온다. 여기저기서 할머니들이 내미는 여러 가지 물건을 사다 보니 동행한 아내의 양손에도 선물(!)꾸러미가 가득했다. 거창은 연중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많아, 당도 높은 과일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곳 사과만 먹어도 거창 방문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

    지방도로 1084번을 따라 가조면 방향으로 가다 농산물 집하장 부근 언덕에 보물 제377호 양평동석조여래입상이 있다. 주변에 주춧돌이 남아 있고, 불상 앞에 석등 재료가 흩어져 있으며 금양사 혹은 노혜사라고 하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불상의 높이 3.7m로 연꽃무늬 받침대에 서 있다. 머리는 신체에 비해 크며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모습이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눈·코·입 또한 솜씨 있게 처리되어 있다. 원통형의 신체, 굴곡진 허리와 두 다리 등에 양감이 잘 표현된 통일신라 후기의 우수한 불상이다. 불상 옆에는 민가 같은 금융사 작은 절집에서 비구니 스님이 불상을 돌보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불상 앞에는 중년의 한 남자가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올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사연을 물었더니 마음을 비우기 위한 기도를 자주 하고 있다고 했다. 마음씨 후한 후원보살이 차려주는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짧은 겨울 해는 서산으로 이내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 여행 TIP 맛집

    ▲사과애도니떡갈비: ☎ 055-942-6523. 거창읍 대동리 726-2. 떡갈비:6000원. 거창군 특산품 브랜드인 ‘쑥먹인 돼지고기 ‘애도니’와 전국적인 지명도를 자랑하는 ‘거창사과’를 다져 넣어 만든 ‘사과애도니떡갈비’는 독특한 음식이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 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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