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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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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 (17) ‘토호’로 본 중앙과 지방의 역사

왜 지방이 중앙에 종속됐을까

  • 기사입력 : 2010-02-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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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는 일전에 이 지면을 통해서 중앙정부에 종속된 지방의 역사를 말한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이 중앙과 지방의 역사는 누가 옳다 그르다 판단을 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중앙의 역사에 지방이 종속되는 현상은 안타깝지만 이는 국가 운영의 효율을 담보할 수 있기에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한 반론의 측면으로서 토호라는 집단에 대해 역사적으로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다시피 토호라는 집단은 지역에서 군림해 온 ‘유지(有志) 집단’을 얘기한다. 중앙집권화가 이뤄진 이후부터 중앙정부는 지방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하여 지역의 유지 집단을 달래거나 혹은 강압하여 반발하지 못하도록 유도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유향소를 설치하고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수령과 유향소의 유지 세력들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 지역의 특수성과 자치성을 인정하는 대신 지역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배도 역시 인정한다. 이런 관계는 어느 정도 양측의 긴장 아래 수평적 관계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92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농민들의 저항이 거세져 지방통제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특히 1930년대 이후 일본은 침략전쟁을 본격화하기 위해 조선 농촌사회를 장악할 필요성을 느끼고 유지 집단들에게 접근하였다. 유지 집단들은 지역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일부 유지들은 곡식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베풀어 주는 등 신망을 얻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일제는 농촌사회의 장악을 위해 ‘영향력 있는 유지 집단의 포섭’, ‘일제의 조치에 내응하여 일을 처리할 행동대원의 확보’를 목표로 삼았다. 일제는 ‘농민들을 갱생시키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농촌진흥회 조직) 농촌사회에 치밀하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유지 집단들에게는 농촌진흥회의 고위직과 도평의회에 자리를 마련해 주고 협력을 구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농촌진흥회의 실무진들을 구성하여, 이들을 농촌사회 통제의 앞잡이들로 이용했다.

    과거 조선시대 양반 유지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기반은 지역에서 쌓아온 명성, 토지와 친인척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유지들의 존립 기반은 일제가 되었다. 기반이 변함에 따라 유지들의 삶도 달라졌다. 과거 조선의 양반 유지들은 생산기반인 토지가 있는 농촌에 살았지만, 새롭게 토호가 된 이들은 관공서가 밀집되어 있는 읍내나 시내로 몰려들었다. 우리 역사에서 중앙정부가 지역의 유지 집단들을 완전히 장악 한 시대가 온 것이다.

    일제시대가 지나가고, 전쟁의 혼돈과 토지개혁이 일부 이뤄지면서 토호 세력들은 그 힘이 약해지거나, 혹은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자구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그러던 차에 박정희 정권은 새마을 운동을 시작했다. 새마을 운동은 ‘농촌의 근대화’라는 결실을 이뤘다는 긍정 측면도 있지만, ‘농촌의 희생을 바탕으로 산업화 달성’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운동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정권은 토호들을 재양성했고, 각종 이권과 개발이익을 주며 중앙정부에 종속시켰다. 또한 농촌진흥회와 유사한 각종 관변단체를 조직해 토호들에게 그럴듯한 직함을 주고는 그들을 관리했다. 현재 지방이 중앙에 종속된 현실에는 바로 이런 역사의 이면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러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빚어진 ‘지방의 중앙 종속’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역의 토호들은 중앙정부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지방권력을 장악해 나갔다. 개발업자와 부패한 공무원, 지역의 정치인들을 엮어 그들만의 성역을 일궈나갔다.  그들은 지역개발을 부추겼고, 그 과정에서 힘없는 사람들은 쫓겨났고, 토호들은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 중앙정부는 개발 지원금을 통해 토호 세력을 확실히 장악했으며, 개발업자와 부패 공무원들은 그들대로 배를 채웠다. 지방선거는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 영향력을 지닌 토호 혹은 대리인의 각축장이 되었다.

    다가오는 6월 2일 지방선거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상태로 선거를 하면 늘 같은 결과만 반복하고, 토호들의 성역만 단단해질 따름이다. 달콤한 개발공약은 도민들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되고 만다. 도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도민들을 어루만져주고, 도민들의 목소리를 키워주는 세력이다. 3·15의거, 부마항쟁을 통해 시대의 어둠을 몰아내었던 도민들의 참된 의식이 절실한 시점이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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