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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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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의 향기] (21) 사람대장간 얼렁뚱땅

배움의 문 두드리면 문학의 길 열리는 공간

  • 기사입력 : 2022-01-04 21:4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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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장간에서는 뭐가 들어와도 일단 두드리면 뭐든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람도 이곳에 들어오면 뭐든 얻고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인근 바다를 끼고 달리다 보면 2층짜리 건물 한 채가 가파른 경사 너머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건물 입구에 도착하니 ‘사람대장간 얼렁뚱땅’ 이라고 적힌 노란색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바로 옆에는 ‘더불어 기뻐하는 집 與樂齋(여락재)’라고 새겨진 푯말이 있다. 가정집인가? 카페인가? 고민하는 찰나. 김규동 대표가 건물에서 나와 인사를 건넸다.

    “제가 살고 있는 집 맞습니다. 카페인 줄 알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죠. 정의 내리자면 이곳은 공유 공간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체득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대장간에 방문하는 사람들과 문학과 음악, 나아가 인생 얘기도 편하게 주고받으며 놀 수 있는 놀이터입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위치한 사람대장간 얼렁뚱땅 전경./김규동 대표/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위치한 사람대장간 얼렁뚱땅 전경./김규동 대표/

    ◇사람대장간 얼렁뚱땅은= 사람대장간 얼렁뚱땅 김규동 대표는 지난 2020년 정년퇴임한 뒤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2020년 마지막날인 12월 31일 ‘사람대장간 얼렁뚱땅’이라고 적힌 간판을 걸고 모든 사람들에게 대문을 활짝 열었다. 42년간 직장생활을 해왔던 그는 퇴직하면 누군가에게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자고 늘 생각했었다. 2002년 ‘한국문인’을 통해 등단한 시인인 그는 사람들에게 문학이 친근한 존재로 인식되길 바랐다. 가정적인 분위기에서도 재미있게 인문학 등 문학 활동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 생각을 현실화 시킨 게 바로 ‘사람대장간 얼렁뚱땅(마산합포구 구산면 안녕로 396)’ 공간이다.

    사람대장간 얼렁뚱땅 간판./김규동 대표/
    사람대장간 얼렁뚱땅 간판./김규동 대표/

    “제 명함을 보면 모루가 있지요. 일반적인 대장간에서는 망치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데, 여기는 사람대장간이기 때문에 모루 위에 책하고 펜이 있지요. 즉 이곳에서는 책으로 할 수 있는 독서모임, 독서토론을 진행합니다. 또 펜으로 할 수 있는 자서전 등 글쓰기를 도와드립니다. 제가 배운 걸 남들과 함께 나누는 데 기쁨이 있더라구요.”

    사람대장간 얼렁뚱땅 공간 곳곳에는 책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김 대표는 오는 손님들에게 이 책을 바탕으로 책 소개도 해준다. 거실을 비롯해 2층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음향기기와 LP, CD를 마주할 수 있다. 사람대장간을 찾아오는 누구든지 함께 들을 수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가 공유공간이자 삶의 터전을 산과 바다를 끼고 있는 한적한 곳으로 잡은 이유기도 하다.

    서재에 꽂힌 책들.
    서재에 꽂힌 책들.

    “살아 온 세월을 바탕으로 경험과 지식을 더하고 곱하고 나누며 살자고 생각했죠. 공간의 존재 이유기도 해요.”

    시인인 김규동 대표 
    ‘친근한 문학’ 만들기 위해
     42년 근무 직장 퇴직 후
     창원시 구산면 가정 집에
     작년 2층 규모로 문 열어

     망치 두드리는 공간 아닌
     인문학 배우는 놀이터로
     10년 대학 강연 경험 바탕
     독서모임·토론 비롯한
     자서전 등 글쓰기 강연

     청년에겐 사회 노하우를
     부부에겐 인생 상담 진행
    “사람 간 따뜻함 느끼고
     경험과 지식 나누는
     내 집 같은 공간 됐으면”

    ◇대학에서 글쓰기 등 강의= 시인이자 문학박사인 김 대표는 2007년부터 10년 동안 창원대학교에서 ‘생각하는 글쓰기’와 ‘현대 문학’ 등을 강의했으며 야학인 진달래평생학교에서는 2009년부터 3년간 매주 한글과 문학을 가르쳤다. 최근에는 매주 화요일 창원문화원에서 문예창작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대장간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글쓰기 강의를 진행한다. 그럴 때면 거실은 강의실이 된다.

    “대게 문학은 어렵다, 시는 어렵다고들 얘기합니다. 그래서 ‘시는 시인들끼리 하는 거다’ 이렇게 말하곤 하죠. 하지만 문학이 우리 실생활로 받아들여지면 충분히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거든요. 실생활에 문학이 들어갈 수 있는 요소들에 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조금씩 양념을 쳐주면 삶이 문학으로 다채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문학수업을 듣고 있다.
    사람들이 문학수업을 듣고 있다.
    티타임 시간.
    티타임 시간.

    ◇매달 30~80여명 문학·삶 지식 얻어가= 지난 일 년간 매달 30~80여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오고 갔다. 손님들은 사람대장간에서 문학뿐만 아니라 삶의 지식도 얻어간다. 사람대장간 얼렁뚱땅은 집이기도 한 만큼 화목한 가정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가족신문을 만들어 자녀들과 소통하고 아내와 자녀들의 생일 등 특별한 날마다 제작한 앨범들을 보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이곳에서 김대표는 부부코칭도 진행하고 있다.

    “저는 부부학교와 아버지학교도 다녔어요. 가정이 파괴되고 파편화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더라구요. 저희 부부는 38년을 함께 살면서 오붓하게 가정을 꾸려가고 있죠. 이런 제 경험들이 화목한 가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이곳을 찾는 청년들에게는 본인의 인생을 나눈다. 김 대표는 강원도 영월 출신으로 어려운 형편에 고교 진학은 학비를 지원해주며 취업에 용이한 부산기계공고를 택했다. 1979년 고교 졸업 직전인 1978년 12월에 창원 삼성중공업 실습생으로 취업해 밥벌이를 시작했다. 그는 회사명이 바뀐 창원 볼보건설기계코리아에서 정년까지 근무했다.

    음향기기와 LP판.
    음향기기와 LP판.
    책으로 가득한 내부.
    책으로 가득한 내부.
    김규동 대표가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김규동 대표가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오랜 기간 현장에서 근무하고 고군분투해 온 만큼 협력업체와의 관계, 중소기업의 현실 등을 몸소 알게 됐죠. 제가 겪고 느낀 사회생활을 이야기해줍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나날이 삭막해지고 도식화되는 사회 분위기 속 사람대장간에서나마 사람 간의 따뜻함을 느끼고 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사람대장간은 다른 문화공간과 달리 가정집이잖아요. 가정만의 푸근하고 내 집 같은 그런 안락함이 장점이죠. 대장간에 와서 인문학을 접하면서 과한 점은 빼면 되고 부족한 점은 더해가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대장간을 나갔을 때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아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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