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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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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설화 ‘황세와 여의낭자’ 사랑이 다시 피다

[리뷰] 김해문화재단 창작연극 ‘불의 전설’
김해 봉황대에 얽힌 설화 바탕으로 제작
‘불의 여인’ 숨기고 살아가는 여의 중심

  • 기사입력 : 2021-10-18 12: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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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를 보는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뛰는 걸까. 여인의 옷이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들었단 말인가.” “당신은 꿈속의 여인이오. 그대의 기억에 남고 싶소. 이걸 가져주오. 당신을 향한 내 기억입니다.”

    황세와 여의낭자의 사랑이 연극으로 피어났다. 지난 14~17일 김해문화의전당 누리홀에 올려진 초연 창작극 ‘불의 전설’을 통해서다.

    ‘불의 전설’은 2019년 제1회 김해문화재단 희곡 공모전에 당선된 정선옥 작가의 작품. 김해 봉황대에 얽힌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서울실용예술전문학교 오세혁 작가과 교수가 각색을, 거제 극단 예도 이삼우 상임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다.

    연극 ‘불의 전설’의 한 장면.
    연극 ‘불의 전설’의 한 장면.
    연극 ‘불의 전설’의 한 장면.
    연극 ‘불의 전설’의 한 장면.

    연극은 인형놀이를 하는 세 아이들이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구지가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의낭자, 황세, 진, 유민공주 네 남녀의 엇갈린 운명이 이야기의 골자다.

    무대는 철과 현을 형상화한 제단, 구지봉, 거북내, 봉황국기 등 가야를 상징하는 배경과 소품들로 채워졌다. 극 중 여의는 가야의 강력한 기술이자 권력의 핵심인 철 제련에 필요한 불을 상징한다. 이 때문에 가야의 부국강병을 위해 국가에 목숨 바쳐야하는 위기를 겪는다. 신탁을 받은 여의가 여성의 삶을 포기한 채 남자로 살아야했던 과거가 드러나는 장면에선, 인물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불의 여인’ 여의를 지키려는 황세와 진, 여의를 취해 권력을 잡으려는 왕의 대립 구도는 몰입도를 높였다. 특히 개인이 존중되지 않는 국가지상주의는 오늘날 정세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우리 삶의 태도를 반추하게 했다.

    정선옥 작가는 “여의는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권력의 도구이자 상징이다. 설화에선 여의와 황세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다. 둘 다 그냥 죽은 게 아닌 사랑을 위해 희생했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비극”이라면서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가야의 미래를 걱정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국가 가치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야기의 백미는 황세와 진이 여의의 사랑을 확신하는 장면이다. “여의를 살릴 수만 있다면 못난 저의 심장 따위 제단에 바칠 수 있습니다. 제 사랑에 자격이 있다면 이 목숨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세야, 너에겐 사랑의 확신이 있구나. 나에게도 여의를 지킬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이 심장을 기꺼이 바치고, 나의 조국 가야도 사랑도 우정도 모두 지킬 수 있을 것인데. 왜 나에겐 확신이 없는 것인가.” 애틋한 대사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했다.

    연극 ‘불의 전설’의 한 장면.
    연극 ‘불의 전설’의 한 장면.
    연극 ‘불의 전설’ 무대.
    연극 ‘불의 전설’ 무대.

    이 뿐만 아니다. 조연들의 중독성 있는 대사와 감초 연기는 연신 관객들의 웃음보를 터트렸다. 고대가요를 현대적인 안무와 접목하거나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연출의 묘는 무대를 생동감 있게 이끌었다. 105분의 긴 러닝 타임에도 황세와 여의의 감정선을 오차 없이 따라 가는 가야금 연주단의 선율도 완벽했다.

    한 관객은 “원래 설화의 내용은 황세가 유민공주의 부마(駙馬)가 된 후, 여의가 황세를 그리워하다 상사병으로 죽는다. 황세도 여의의 죽음으로 병을 얻게 되고, 유민공주 역시 출가해 비구니가 된다. 여기서는 두 주인공이 모두 살고 가야를 부활시키는 것으로 각색해 더욱 재밌었다. 주인공들의 불행이 반전되면서, 행복한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게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반면 주인공 여의가 아닌 유민공주가 진취적인 여성으로 분해 깨달음을 얻는 장면에선, 극의 흐름이 전도된 듯한 인상을 심어줬다. 그럼에도 유민공주가 외치는 마지막 대사는 울림이 컸다. “불의 전설은 불의 여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설이 되어 스스로 불꽃을 일으키기 위함이다.”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닌 노력으로 바뀐다’는 진리가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시켜 준 무대였다.

    글·사진=주재옥 기자 jjo5480@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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