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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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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엄마가 좋지만’- 김현수(밀양경찰서 중앙지구대 팀장)

  • 기사입력 : 2021-04-08 21: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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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중순경 늦은 밤 순찰팀 직원들이 순찰중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10살 정도의 남자 초등학생을 발견해 파출소로 데리고 왔다. 무슨 이유로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집에 가봐야 반겨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가기 싫다며 학원을 마치고 나와 그냥 아무 곳이나 돌아다니는 중이라고 말했다.

    집이 어딘지도 잘 알고 엄마가 어디서 무슨 일 하시는지도 잘 아는 똑똑한 꼬마였다. 엄마 전화번호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 엄마와 통화를 해보니 엄마는 요양병원에 보호사로 밤늦게까지 일해야 되기 때문에 아들을 혼자 집으로 좀 보내 달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꼬마와 대화를 나누면서 아빠는 없느냐고 물어보니 아빠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아무도 없는 집으로 가는 것보다 차라리 고아원으로 갔으면 좋겠다며 고아원으로 보내 달라는 꼬마의 당돌한 말에 우린 너무 놀랐다.

    결국은 엄마와 가족이 좋지만 함께 해줄 사람이 없다는 이 꼬마는 집이 싫고 학교도 싫고 고아원이 더 좋다는 말을 하는 것은 사람이 그리워서 외로움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놀아줄 친구가 많은 고아원이 집보다 좋다는 말이었다. 요즘은 가족 구성원이 대부분 자녀가 1명이나 2명이라는 현실에 아빠까지 없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자녀들의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겨우 10살의 나이에 외로움을 겪으며 생활하는 꼬마의 어두운 내면을 보여주는 현실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최근 아동학대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큰 사고가 터진 후에 학대자의 잘잘못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교육부서나 행정에서 아동들의 현실을 면밀히 분석하고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날 밤 꼬마는 우리 직원들과 행정관서의 협조로 결국은 일을 마치고 온 엄마 품으로 되돌아갔지만 꼬마가 떠난 뒤 남기고 간 여운은 우리들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하고 안타까운 기억의 시간이었다.

    김현수(밀양경찰서 중앙지구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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