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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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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이주민의 벗’ 윤은주 꿈꾸는 산호 작은도서관장

“함께 읽고 쓰며 다문화 이어주고 이주민 보듬어요”

  • 기사입력 : 2021-01-20 21: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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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신념과 재능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값진 일이다. 한 사람의 신념과 재능이 자신만을 향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향할 때 작게는 누군가를 웃음 짓게 할 수 있고, 크게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서다.

    저마다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신념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살아갈 터. 여기에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차곡차곡 더해 우리 사회를 보다 더 다양하게 가꿀 수 있도록 씨앗을 뿌리는 이가 있다.

    “이 책 한 번 보실래요?”

    1월의 어느 날 오후 취재를 위해 찾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창원시여성회관 마산관. 이곳 1층 꿈꾸는 산호 작은도서관에서 만난 윤은주(54) 관장은 자신과 결혼 이주여성들이 함께 서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표지의 책 한 권을 건넸다. 창원다문화어린이도서관 ‘모두’ 운영실장을 맡고 있던 지난 2016년 다문화 현장에서 겪은 일들을 모아 쓴 자신의 수필집 ‘마음의 도화지에 그려진 다문화 세상’이었다.

    윤은주 꿈꾸는 산호 작은도서관장이 도서관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윤은주 꿈꾸는 산호 작은도서관장이 도서관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자신의 책을 자신있게 권하면서 읽어보라고 한 대목은 예상 밖에도 자신이 쓴 글이 아니었다. 미국 출신 영어강사, 중국 한족 출신 결혼이주민,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 노동자, 필리핀·인도네시아·일본 출신 결혼 이주민, 베트남 출신 중도입국자, 그리고 부룬디 출신 귀화인이 각각 쓴 글을 모은 ‘나의 한국살이’라는 테마였다. 윤 관장이 지난 2008년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에서 한국어교육 자원봉사를 한 이후부터 만난 많은 이주민들 중 일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일부는 그러나 윤 관장의 ‘전부’이기도 하다. 윤 관장은 ‘우리 모두가 조금 다르지만 많은 면에서는 서로 같은 사람’이라는 신념을 갖고 세상을 바꿔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 그는 햇수로만 13년째 ‘다문화’를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이라고 지역사회에 알리는 데 헌신하면서 이주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 안는 일에 최선을 다해왔다. 한국어교육 자원봉사자로, 창원다문화어린이도서관 운영실장으로, ‘이주민의 벗 모자이크’ 운영자로, 경남문화다양성연구회장으로서 다문화 현장에서 만난 여러 이주민이 그의 일부이면서 전부이기도 한 이유다. 그의 표현을 빌려 ‘마음 통장의 사람들’이다.

    윤은주 꿈꾸는 산호 작은도서관장이 도서관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윤은주 꿈꾸는 산호 작은도서관장이 도서관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그의 ‘마음 통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그가 지난 2008년부터 한글 선생님이자 후견인으로서 역할을 해온 아프리카 부룬디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마라토너이자 경영학 박사인 김창원(43·현대위아·부룬디 이름 버징고 도나티엔)씨다. 지난 2003년 브룬디 국제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던 김씨는 그해 8월 대구 유니버시아드 하프마라톤에 출전했다가 고국의 내전이 악화돼 귀국하지 못하고 한국에 살게 됐고, 난민 지위를 거쳐 어렵사리 귀화 후 경남대에 편입해 학사와 석사·박사 학위를 차례로 취득해 정착해 살고 있다. 그 전 과정을 윤 관장이 도운 건 물론 김씨의 아들인 한준·한빈 군의 이름을 지어준 것도 윤 관장의 몫이었다.


    2008년부터 한국어교육 봉사
    이주민과 인연 수필집으로 펴내
    13년째 ‘다문화’ 알리는 데 헌신

    독서교육 재능에 다문화 신념 녹여
    글쓰기·독서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
    시각 장애인엔 ‘책 읽어주는’ 봉사

    ‘어린이·엄마 위한 도서관’ 열어
    동화구연 등 프로그램 운영
    평범한 사람 ‘책 쓰는 공간’ 계획


    인터뷰 도중 윤 관장의 눈시울이 일순 붉어졌던 것도 김창원씨를 말하던 순간이었다.

    “도나티엔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픔을 많이 겪은 탓인지 자기 이야기를 전혀 안 했어요. 내전 당시 끔찍한 학살도 목격했고, 내전이 이어지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기도 했거든요. 차츰 저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고,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배움에 대한 열망이 큰 걸 알게 돼 편입과 그 이후 대학원 진학을 알아봐주고, 같은 브룬디 출신인 지금의 아내와 결혼도 도왔죠.”

    김창원씨도 윤 관장의 책을 통해 “원래 개인적으로 말 잘 안하는 편인데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열렸어요. 선생님을 만난 뒤에 많은 행운이 있었습니다. 그분을 만난 뒤에 내 인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선생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윤은주 꿈꾸는 산호 작은도서관장이 도서관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윤은주 꿈꾸는 산호 작은도서관장이 도서관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다양성의 힘을 믿는 그는 ‘다문화’와 자신의 ‘재능’을 보태 세상을 조금씩 더 이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교육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윤 관장은 한국독서개발원 전임강사, 창원문성대 독서지도사양성과정 강사를 비롯해 독서코칭강사로도 오랫동안 활약해오고 있다. 지난 2009년엔 ‘한국수필’로 등단한 문인이기도 하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 그리고 우리 사회를 잇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다문화를 접목한 도내 각 도서관의 독서·글쓰기 프로그램 운영강사로 활동한 것은 물론이고 시각 장애인 전문 독서 치료와 글쓰기 지도도 꾸준히 해왔다.

    그는 “도내 각 학교를 찾아가 글쓰기·독서 강의와 교육을 진행할 때 결혼 이주 여성들도 함께해 반반마다 찾아가 각 나라에 맞는 체험교육을 하는데, 학생들의 관심이 아주 높다”고 설명했다. 윤 관장은 또 “시각 장애인이라면 으레 점자를 읽을 줄 알 거라는 편견이 있는데, 점자를 읽을 줄 아는 시각장애인은 전체의 5%에 지나지 않는다”며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어 점자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봉사도 8년째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윤 관장은 문화 다양성을 실현하기 위한 그의 신념과 독서교육 역량을 이제 그가 자리 잡은 새로운 터전에서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가 관장으로 있는 꿈꾸는 산호 작은 도서관은 여성회관 내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해 들어선 ‘어린이와 엄마를 위한 도서관’이다. 지난해 11월 개관 후 시민들의 관심 속에 소장 도서도 4000여권까지 늘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이 공간을 동화구연, 독서회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자서전 등 ‘책을 쓰는 공간’으로도 꾸리려 한다. 그가 속해 있는 가향문학회, 경남문화다양성연구회와 함께 세미나, 다문화포럼도 계획하며, ‘규모는 작지만 의미는 작지 않은 작은 도서관’을 만들려고 한다. 윤 관장이 몸담고 있는 곳뿐만 아니라 작은도서관이 지역사회에서 자리 잡아가야 할 방향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 관장은 “그러기 위해선 지자체가 이곳뿐만 아니라 지역 내 작은도서관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에서 지원을 해주지만 인력과 예산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하며 “공공근로인력 지원, 예산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의 신념과 재능을 ‘공공재’로 써오며, 우리 사회를 ‘다름을 받아들이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윤은주 관장. 그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지금 그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저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을 하면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또 ‘빨강머리 앤’처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실천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지식들이 모여 우리 사회가 더 다양해지고 너그러워질 수 있도록 ‘잇는 역할’을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해나갈 생각입니다. 다양성은 힘이 세니까요.”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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