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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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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서예가의 희열- 윤영미(서예가)

  • 기사입력 : 2021-01-03 19: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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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씨를 보는 순간 전율을 느꼈어요.” 듣고 있던 서예가가 도리어 더 전율을 느꼈다. 어느 교육학자의 글귀로 한글서예 작품이 건물 벽에 걸리기 전, 작품이 펼쳐지는 순간 팔에 털이 곤두서더란다. 그는 붓이라고는 잡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떠나는 선배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 재직 기념 글을 들고 서예가를 찾아왔다. 약간의 고민 끝에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러나 멋스럽게 서예가의 글씨로 써 내려갔다. 완성된 족자를 펼쳐드는 그들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얼마 전 모 방송국 다큐멘터리 제작에 키보다 더 큰 붓으로 글씨 쓰는 모습을 촬영하게 되었다. 다소 젊은 피디는 무심히 곁에서 지켜보다가 그만 소름이 돋아 혼이 났다 하더란다.

    그렇다. 내가 꿈꾸는 서예는 이런 것이다. 서예가들끼리 누구의 필의(筆意)를 닮았느니, 어디 서풍(書風)이니 하며 자기의 학서 과정을 자랑하고 감상하기만을 즐긴다. 서예로 경제활동을 하고자 하지만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푸념을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멈추지 않았던 그 노련한 붓이 대중 속으로 나오는 것을 나는 희망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서예를 희망한다. 좋은 음악처럼 붓이 주는 그 수려한 공감대로 대중들에게 힐링이 되길 원한다. 일상 속 문자는 공감의 최고 수단이 되어 주었다. 나에게는 한글서예가 더더욱 그랬다.

    거리마다 즐비한 간판이 누군가의 글씨로 쓰여진 창작예술작품이기를 원했고, 일상에서 주고받는 감사패조차도 서예가의 손으로 제작된 작품이 오가길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집집마다 어떤 형식으로든 서예작품 한 점씩 있는 이야기가 있는 풍경을 원했다.

    세상이 변하는데 서예가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옛것에 대한 애정인가 고집인가. 나는 공감하는 서예에서 희열을 느꼈다. 누구나가 함께 눈을 맞출 수 있는 글씨예술을 원한다.

    “아이쿠 선생님, 저건 제가 홀인원해서 어느 아무개 서예가의 글씨로 받은 패인데, 홀인원도 기쁘지만 덕분에 작품 한 점 책상 위에 있으니 제가 예술적 소양이 아주 깊어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윤영미(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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