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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2020 원더키디- 한성태(한국전기연구원 전기물리연구센터장)

  • 기사입력 : 2020-12-06 19:5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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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중순,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엑스는 우주인 4명을 태운 유인 캡슐 ‘리질리언스(Resilience)’ 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스페이스-엑스는 국제우주정거장 보급과 민간 및 정부의 인공위성 발사 서비스를 겨냥해 2002년 설립된 민간기업이다. 향후 인류의 화성 정착을 포함하여 유인 우주탐사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일론 머스크의 꿈이 담긴 기업이다. 우주인 4명을 국제우주정거장에 실어보내는 첫 공식 임무인 이번 발사의 성공을 계기로 본격적인 민간 우주 수송 시대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관련 기사를 읽을 때 필자의 눈을 잡아 끈 것은 일론 머스크가 할리우드 의상 디자이너에게 의뢰하여 제작했다는 우주복이었다. 지금까지 우주인들이 입었던 풍선같은 우주복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우주에 대한 꿈을 다시 키울 수 있도록 멋지게 제작하려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슈퍼히어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날렵한 우주복은 30여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필자가 고등학생이던 1989년, 전파상 유리 너머에 진열된 TV에서 처음 보았던 애니메이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에서 지구인들이 입었던 우주복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2020 원더키디’는 KBS에서 처음부터 해외수출을 목표로 큰돈을 들여 제작한 순수 국산 TV애니메이션 시리즈이다. 이후 프랑스와 일본에도 수출될 정도로 제대로 만든 한국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당시 시점에서 먼 미래인 2020년에 인류가 자원고갈과 인구증가, 환경문제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미지의 외계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보낸 우주선이 실종되었는데, 탐사대 선장의 아들 ‘아이캔’이 아버지를 찾아나서기 위해 수색대 우주선에 잠입하면서 겪게 되는 모험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기계의 모습을 한 외계 존재들을 만나 싸우고 탈출한다는 내용으로 ‘기계문명 비판’이라는 암울한 세계관을 깔고 있다. 때문에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난해해서 오히려 필자 같은 이공계 청소년층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한국의 칼 세이건으로 불릴 수 있는 고 조경철 박사가 감수했던 작품으로, 로봇 문명과 초인공지능이라는 30여년 전 설정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한 지금 보아도 낯설지 않다.

    당시 작품의 먼 미래 배경이었던 2020년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고, 그마저도 열두 번째 달에 진입해 있다. 인공지능과 우주 탐사로 미래를 준비하던 인류가 바이러스 공격에 우왕좌왕하며 보낸 한 해였다. 초·중·고·대학생 할 것 없이 각급 학교 신입생들은 제대로 된 시작도 못해보고 한 해를 마감하게 되었다. 특히 지난주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은 코로나가 바꾼 일상에 적응해 인생의 한 단계를 넘어서야 했으니, 진정한 코로나 1세대로 불릴 만하다.

    사회적인 ‘멈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멈춰진 시간은 버리는 시간이 되기 쉽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미래를 준비하는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흑사병으로 휴교령이 내려져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던 뉴턴은 자가 격리 기간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도출하기 위한 기본 아이디어들을 얻었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고립감을 느끼는 대신, 영혼을 살찌우고 자기만의 철학을 구축하기 위해 독서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겨울이 깊을수록 봄은 멀지 않다고 한다. 봄이 오듯이 일상은 언젠가 회복될 것이다. 명저 ‘총, 균, 쇠’로 유명한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최근 저서인 ‘대변동’에서 위기(crisis), 선택(choice), 그리고 변화(change)라는 키워드로 위기의 진행과 극복 과정을 요약했다. 필자는 여기에 기회(chance)를 덧붙이고 싶다. 자신과 더 깊이 대화하고 선택한 변화였기에, 지금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회고할 날이 올 것이다.

    한성태(한국전기연구원 전기물리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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