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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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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할배 67명이 쓴 감동의 시

경남평생교육진흥원, 문해교육 어르신 시집 ‘어느 멋진 날’ 펴내

  • 기사입력 : 2020-12-02 12: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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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자식들을 키우며 아픔과 기쁨,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굴곡진 삶의 여정을 지나온 67명의 할매, 할배들이 글자 하나, 낱말 하나를 배우며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꾹꾹 눌러쓴 글들이 시집 ‘어느 멋진 날’에 가지런히 담겨 나왔다.

    희·로·애·락 네 개의 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경남평생교육진흥원 문해교육 수업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작품을 묶은 것이다. 생애 처음 글을 익히며 맛보았던 기쁨, 환희의 순간과 시집살이, 농삿일 등 힘겨운 인생의 순간에 느꼈던 감정, 눈물이 차오르던 기억의 저편과 황혼에 만난 배움의 즐거움들이 삶의 활력이 되던 모든 순간들이 어르신들의 손끝을 통해 소중하게 기록돼 있다.

    어느 멋진 날
    경남평생교육진흥원 문해교육 어르신들의 작품집 ‘어느 멋진 날’

    ‘열아홉 살 때/받아 본 연애편지/봉토를 뜯었다/사진 한 장 그리고 꼭 찬 글자들/뭐라고 썼는지 우짜라는 것인지/글 모르는 나는 답답해서 울었지/엄마한테 들키면 맞아 죽을 것이고/누구한테 보일 수도 없던 내 편지/읽을 수 없던 내 첫사랑/애만 태우고 끝나고 말았다/열아홉 처자가/여든두 살 할머니가 되어’ -(곽곡지 ‘편지’ 일부).

    여든두 살 할머니가 열아홉 처녀 적에 받은 연애편지에 관한 이야기다. 읽을 수 없어 뜯지도 않은 봉투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다 60년이 훌쩍 지나 그때 못 읽은 편지를 읽는다. 그때 글자를 알았다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할머니의 생이 궁금해진다.

    ‘오만데/한글이 다 숨었는 걸/팔십 넘어 알았다/낫, 호미, 괭이 속에/ㄱㄱㄱ/부침개 접시에/ㅇㅇㅇ/달아 놓은 곶감엔/ㅎㅎㅎ/제아무리 숨어봐라/인자는 다 보인다’ -(정을순 ‘숨바꼭질’ 전문).

    경남평생교육진흥원 문해교육 참여 어르신들이 시를 쓰고 있는 모습./경남평생교육진흥원/
    경남평생교육진흥원 문해교육 참여 어르신들이 시를 쓰고 있는 모습./경남평생교육진흥원/

    글자를 알아가는 할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글자를 모르던 시절 바라보던 세상과 글자를 배운 지금 할머니의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 생활 속 글자를 찾아내는 할머니의 ‘숨바꼭질’이 한없이 즐거워 보인다.

    홍재우 경남평생교육진흥원장은 문해교육에 참여한 어르신들에 대해 “이 예순일곱 명의 작가들은 비록 정식 등단의 절차를 거치진 않았지만 짧지 않은 삶 위에 겹겹이 새겨진 무늬를 표현하고, 그 아래 새겨진 깨달음을 읊조리고 목 놓아 노래하는, 이미 시인들입니다”고 전했다.

    김종민 기자 jm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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