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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유리병 속의 죽음- 송신근(수필가)

  • 기사입력 : 2020-11-19 20: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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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바람에 하늘도 파랗게 얼어붙는 겨울이 되면 나는 바다를 찾는다. 검은 물결이 수면 위에 찰랑거리는 겨울 바다의 심연, 그 깊은 침묵에 다가서지 못한다면 내 삶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섬에서 태어나고 보낸 나의 유년기는 하나의 작은 그릇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그 속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기억들이 몽돌처럼 담겨 있다.

    그때부터 바다는 낭만적이고도 원시적인 색깔로 나의 세계를 그려 주었다. 시가 되어 문학적인 감수성을 심어 주었고 연인으로서 애틋한 그리움을 생각하게 했으며 화가가 되어 내 혼의 여백에 멋진 풍경을 펼쳐놓았다. 현실과 이상의 한가운데서 일렁이고 있는 바다는 내 머릿속에서 끝없는 상상력을 유도해 내며 동경해오던 푸른 꿈들을 피안의 항구로 띄어 보내기도 했다.

    오래전 겨울, 고향인 홍도의 바다를 찾았다. 등대 아래에 있는 해변으로 산책을 나섰다가 돌 틈에서 펄떡거리는 여러 마리의 학꽁치를 목격해 줍다 물웅덩이에 누군가에 의해 버려져 오랜 시간 가라앉아 있는 듯한 유리병 하나를 발견해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그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에 돌로 그 병을 깨 보았다. 유리병 안에는 작은 게 한 마리가 표백된 채 죽어 있었고 입구는 따개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왜 병 속에 죽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다 병과 게의 죽음 사이에 벌어졌던 드라마를 찾아내게 되었다.

    그 게는 한가롭게 먹이활동을 하다가 병 하나를 발견해 억제할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그 속에 들어가 보았을 것이다. 차츰 병에 익숙해지자 자신만을 위한 완벽한 안식처라 생각하게 되었으며, 실제로도 적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살게 된 것이다. 실로 그 병은 그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성소였고 좁은 병 입구는 자기 왕국으로 들어가는 개선문과도 같았다.

    그 집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언제나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투명성이다. 집 밖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연극을 아무런 위험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렇게 병에 집착하면서 먹이 구하는 것 말고는 안주하며 지냈다. 그러다 바닷물이 점점 차가워지자 본능적으로 먹이를 집안으로 모아들이기 시작했다.

    긴 겨울을 위한 채비다. 겨울이 닥치자 집 밖에는 나가지 않고 쌓아놓은 먹이를 먹느라 방심한 사이 매끈한 표면을 좋아하는 따개비가 슬금슬금 기어 들어와 병 입구를 막고 달라붙어 버린 것이다. 유약한 게의 집게다리로는 도저히 떼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빠져 나오려고 광란의 몸부림을 쳐도 소용이 없다. 가장 이상적이었던 보금자리가 어느 순간 자신의 무덤이 되고 만 것이다.

    유리병 속 게의 죽음은 하나의 대상에 집요하게 집착하면서 스스로를 가두고 살지 말라는, 나에게 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집착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집착의 대상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는 것 이상으로 내 자신이 소유 당하고 만다. 돈이나 물질에 집착하면 그것들이 오히려 인간 존재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살아야지 욕망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바로 그의 운명이다. 왜냐하면 욕망은 다름 아닌 그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 의지가 곧 행위이며 행위는 좋든 나쁘든 우리가 받아들게 될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송신근(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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