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0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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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비컴프렌즈 대표 김지영 씨

발달장애인, 꿀벌과 함께 세상을 날게 하다

  • 기사입력 : 2020-11-11 21: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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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달장애인’이 ‘도시’에서 ‘양봉’을 한다? 양산을 기반으로 운영 중인 사회적기업 ‘비컴프렌즈(BEECOMM FRIENDS)’ 이야기다. 발달장애인과 도시양봉의 만남이라니. ‘발달장애’와 ‘도시양봉’ 각각도 익숙치 않은 풍경인데, 이 두 개념이 하나가 됐다. 사회적기업 비컴프렌즈를 통해 발달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를 실현시키고 있는 김지영(49) 대표를 만나봤다.

    김지영 비컴프렌즈 대표가 경남도립미술관 3층 ‘살어리 살어리랏다-별유천지’ 전시에 참여한 발달장애 아이의 작품을 들고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김지영 비컴프렌즈 대표가 경남도립미술관 3층 ‘살어리 살어리랏다-별유천지’ 전시에 참여한 발달장애 아이의 작품을 들고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발달장애를 가진 나의 아이

    첫 아이는 돌도 되지 않아 알파벳과 도형을 구분했다. 내심 영재가 아닐까 기대했다. 어느 날 어린이집 측에서 학부모 면담을 요청했고, 면담 중 김 대표는 아이가 찍힌 CCTV의 한 장면을 보게 됐다. 다른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 때, 아이는 혼자 벽을 따라 하염없이 돌고 있었다. 김 대표는 그 자리에서 ‘아이의 천재성’이 실은 ‘발달장애의 징후’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장애를 거부할 수 있을 때까지 거부하죠. 조금 늦을 뿐이야, 병이니까 치료하면 돼, 하는 식으로. 하지만 저는 바로 수긍했어요. 수긍을 하니 ‘그렇다면 아이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바로 관심사가 전환 되었어요.”

    김지영 비컴프렌즈 대표가 경남도립술관 3층 '살어리 살어리랏다-별유천지' 전시에 참여한 발달장애 아이의 작품을 들고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김지영 비컴프렌즈 대표가 경남도립미술관 3층 ‘살어리 살어리랏다-별유천지’ 전시에 참여한 발달장애 아이의 작품을 들고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양산으로 내려오다

    김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오랜 직장생활을 했다. 광고 디자인계에서 인정 받는 커리어우먼으로 살았다. 첫 아이가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후 생활에도 극적인 변화가 찾아왔지만 그렇다고 아이만 돌보는 삶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첫 아이 5살 무렵 대학원에 진학, 공공디자인을 공부했다. 광고 디자인과 관련 되기도 했거니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을 하고 싶은 욕구와 맞아 떨어지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그와 관련된 일을 구할 수는 없었다. 공공이라는 영역이 가진 한계, 워킹맘의 한계, 장애아를 가진 엄마의 한계. 그것이 현실이었다.

    “광고업계는 굉장히 치열하고 소비적이고 경쟁적입니다. 여기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차였어요. 제 개인적인 성향과도 맞지 않아 뭔가 자꾸 어긋나고 있었죠.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했고. 그래서 20년 쌓은 경력을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었죠.”

    마침 김 대표의 형제들이 터전을 잡고 있던 양산을 귀착지로 삼았다. 2017년, 김 대표는 화려한 경력과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이웃과 친지가 함께하는 ‘킨포크적 삶’을 지향하며 남편과 두 아이를 데리고 오봉산 자락으로 내려왔다.

    “사실 두려웠어요. 서울에서 누리던 많은 것을 하루아침에 잃게 될까봐. 그런데 웬걸요, 오히려 양산에 와서 잃었던 것들을 되찾고 있는 중입니다.”

    비컴프렌즈
    ‘비컴프렌즈’의 도시양봉 교육.

    ◇비컴프렌즈를 설립하다

    김 대표가 양산에 정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산시에서 주최한 사회적 기업 아이디어 공모가 열렸다. 김 대표가 이 공모에서 입상한 모델이 바로 ‘비컴프렌즈(BEECOMM FRIENDS)’다. 발달장애인들이 도시양봉을 업으로 삼아 꿀을 생산하고, 그 꿀을 이용한 가공품을 만들어 판매하며, 도시양봉을 배우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시스템 구축이 주요 골자다.

    “발달장애인 대상 직업 프로그램에는 베이킹과 바리스타가 많아요. 조금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도시양봉이라는 직업 모델이죠. 도시 생태계 복원을 위해 꿀벌 개체 수를 늘이는 공익적인 점, 많은 준비 없이도 시작할 수 있다는 점, 발달장애와 사회적 가치와 접목되는 점을 고려했죠.”

    김 대표는 각지의 양봉업자들을 수소문해 노하우를 배우며 사업모델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발달장애인 도시양봉가는 어떤가?’하고. 말리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럴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몇십년씩 양봉 경력이 있는 전문가들도 ‘양봉에 대해 계속 배우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것이 핵심이었죠. 정성을 들이고 꾸준히 연구하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현재 비컴프렌즈는 오봉초등학교 옥상에 양봉장을 두고 양봉을 하고 있다. 빈 교실에 비컴프렌즈 동아리 방을 만들어 많은 학생들과 어울려 양봉수업도 한다. 여기서 생산된 꿀과 그 꿀을 이용한 비누를 직접 가공해 판매한다. 도시양봉을 체험하고 싶은 학생이나 단체가 교육을 신청하면 직접 파견수업을 가기도 하고, 양봉장으로 초대해 체험도 진행한다.

    ◇함께 성장하는 부모들

    비컴프렌즈가 실행력을 갖춘 건 김 대표와 함께 움직여준 이사진 덕이 크다. 모두 발달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이다. 다섯 가족, 10명의 부모와 그 슬하 6명의 발달장애아가 비컴프렌즈의 일원들이다.

    “사회적 기업가 지원 공모에 나가려는데, 팀원이 필요했어요. 발달장애아가 있는 가족들에게 사업 제안을 했죠. 처음에 모두들 소극적이었어요. 대부분의 반응이 ‘내키지는 않지만, 좋은 일이니까 발은 들여놓자’ 정도였죠.”

    서류구비를 위해 발달장애아 엄마들의 이력서를 받은 날, 김 대표는 밤새 엉엉 울었다. 거기에는 덜컥 장애아의 보호자가 되어 살아온 고단하지만 필사적인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경력단절 이후 아이를 돌보며 사회복지, 미술치료, 바리스타 등 여러 가지를 공부한 이력들이 적혀 있었어요. 장애아를 가진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죠. 저는 그것이 비컴프렌즈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실제 엄마들은 비컴프렌즈를 통해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방학이면 엄마들이 중심이 되어 ‘뭐든학교’라는 교실을 열어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도시 양봉 통합교육을 진행한다. ‘뭐든학교’는 얼마 전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되었다.

    김지영 비컴프렌즈 대표가 도립미술관 ‘별유천지’전 앞에서 발달장애 아이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지영 비컴프렌즈 대표가 도립미술관 ‘별유천지’전 앞에서 발달장애 아이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비컴프렌즈의 경영철학은 ‘가족 회사가 되지 않는다’이다. 장애인 관련 업체 상당수가 부모가 업주가 되어 장애아를 고용하는 형태를 띄는 시류에 반기를 든 셈이다.

    김 대표는 이러한 형태는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때문에 비컴프렌즈는 한 가정의 경제구조에 갇히지 않고, 사회적으로 확장된 회사를 지향한다.

    “아이는 내가 없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지요. 아이는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입고 다치고, 그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도 아프겠지만 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흡함이 있다면 고치고, 부당함이 있다면 싸워나가야 하죠. 많은 장애인 관련 기업과 비컴프렌즈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내 아이 하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 전체를 위해서 이 회사를 만들고 운영한다는 점이에요.”

    같은 맥락에서 탄생한 공간이 ‘오봉살롱’이다. 오봉산 밑에 아담하게 지어진 이 3층 짜리 건물은 1층이 카페를 겸한 공용공간으로, 2~3층은 주거공간으로 이뤄졌다. 지금은 발달장애아 3명과 그의 가족들이 공동주거를 하고 있지만 나중에 발달장애인 8명 정도가 자립을 위한 그룹홈을 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구상해 지어진 공간이다. 독립적인 삶을 위해 발달장애인들이 스스로를 시험할 수 있는, 일종의 인큐베이팅 공간이다.

    비컴프렌즈
    경남도립미술관 ‘별유천지(別有天地)’전의 ‘비컴프렌즈’ 전시.
    김지영 비컴프렌즈 대표가 경남도립술관 3층 '살어리 살어리랏다-별유천지' 전시에 참여한 발달장애 아이의 작품을 들고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김지영 비컴프렌즈 대표가 경남도립미술관 3층 ‘살어리 살어리랏다-별유천지’ 전시에 참여한 발달장애 아이의 작품을 들고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별유천지에 대하여

    최근 비컴프렌즈는 회사를 지역사회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났다. 경남도립미술관에서 기획한 ‘별유천지(別有天地)’라는 전시를 통해 비컴프렌즈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기 위해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소개하게 된 것.

    지난달 22일부터 도립미술관은 3층 전시실에 비컴프렌즈 일원들이 실제 사용하는 양봉 도구들을 전시하고, 관람객들이 발달장애인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영상도 준비했다.

    “미술관 측에서 ‘별유천지’라는 전시명을 제시했을 때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별유천지라는 게 별세계, 이상세계를 의미하는 말이잖아요. 하지만 장애아를 돌보는 삶은 사실 이상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지난하고도 힘든 삶이거든요. 그런데 막상 전시를 준비하면서 사유하게 되더라고요. 별유천지라는 게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지역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우리가 더불어 가꾸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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