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51) 발동전쟁(發動戰爭)

-전쟁을 일으키다

  • 기사입력 : 2020-10-27 08:03:12
  •   
  • 동방한학연구소장

    지난 10월 23일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승리한 7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중국에서는 한국전쟁 참전을 ‘항미원조(抗美援朝)’라고 부른다. 그 뜻은 ‘미국이 북한을 침략하는 것에 대항해서 침략을 당한 조선을 돕는다’는 뜻이다. 이 말 속에는 대한민국은 아예 나라 취급을 받지 못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삼팔선 이남에는 나라는 없고 미국 앞잡이들이 점령해 있는데, 김일성이 그곳을 해방시키려고 하자 미국이 개입했다는 뜻이다.

    약 40분 동안 시진핑 혼자 이야기하고 마쳤는데, 그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미국이 이유 없이 유엔군이란 이름을 가장해서 북한을 침략했다. 그런 상황에 이웃나라 북한이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 나가 싸웠고, 그 결과 크게 승리했다. 미국 같은 패권주의국가는 언젠가 반드시 망한다.”

    오늘날은 옛날의 비밀 자료가 점차 공개되기 때문에 한국전쟁의 발발상황이 잘 알려지고 있다. 1950년 4월 10일부터 25일까지 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에게 전쟁을 할 테니 도와달라고 했다. 스탈린은 “도와줄 테니 모택동 주석에게도 부탁해라”고 했다.

    김일성은 5월 15일 북경을 방문하여 모택동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모택동은 “나라 세운 지 아직 1년도 안 되어 건설하기에 바쁘니 도와줄 수 없다. 전쟁하지 마라”라고 했다. 그런데 6월 25일 김일성은 스탈린의 약속을 믿고 남침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스탈린은 약은 사람이라 도와주지 않고, 중공에게 도와주라고 요청했다.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그 여세를 몰아 북진해 10월 1일 삼팔선을 넘었다.

    다급해진 김일성은 모택동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친필서신을 보냈다. 모택동은 참전하고 싶은데 다른 간부들이 다 말렸다. 1주일의 회의 끝에 10월 8일 참전하기로 마침내 결정했다. 모택동 비서의 이야기로는 “매일 저녁 모택동이 피운 담배의 꽁초가 한 바깨스씩 찼다”고 한다. 그만큼 모택동은 어려운 결정을 했다.

    10월 16일 선발대가 참전하였고, 주력부대가 참전한 것은 19일이었고, 최초의 승리를 거둔 것이 25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23일에 70주년 승전기념행사를 했던 것이다. 중공군은 3년 내내 평균 130만명의 병력을 유지하였다.

    미군이 화력이 우수해도 인해전술로 대응하는 중공군을 쉽게 섬멸할 수가 없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맺었다.

    휴전 직후 모택동은 침략자 미국을 쳐부수고 개선했다고 대대적인 선전행사를 했다.

    그 이후 매년 한국전쟁 전승기념식을 하는데, 시진핑은 이번에 “우리 중국과 조선(북한)은 생사를 걸고 피로써 싸워 위대한 우의를 만들어 내었다”라고 선언하고서 북한과의 긴밀한 관계를 천명하고 계속 지원할 것임을 밝혔고, 미국에도 무역 봉쇄 등의 패권주의 행동은 통하지 않는다고 경고하였다.

    이런 판국에 우리 정부는 스스로 미국과의 관계를 나쁘게 만들고 있으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 發 : 필 발. * 動 : 움직일 동.

    * 戰 : 싸울 전. * 爭 : 다툴 쟁.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