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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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극단 큰들 예술감독 전민규씨

산청마당극마을 터줏대감, 삼대가 예술하는 동네 꿈꾼다
지난 2008년 산청군과 인연
작년 가을 마당극마을에 새둥지

  • 기사입력 : 2020-10-14 2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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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여명이 함께 어울려 사는 예술인 마을의 예술감독이라 해서 자못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려나 했는데 웬걸, 마음씨 좋은 동네 빵집 아저씨 같은, 여유와 부드러움이 한껏 묻어나는 인상이다.

    산청군 산청읍 물안실로에 있는 큰들 산청 마당극마을의 터줏대감 전민규(55) 예술감독을 만났다.

    전민규 극단 큰들 예술감독이 ‘산청마당극마을’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전민규 극단 큰들 예술감독이 ‘산청마당극마을’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아기자기하고 화사한 마을 지리산 전망에 감탄사

    큰길에서 꽤 한참을 차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라 처음에는 ‘과연 이곳에 마을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산청마당극마을’이라고 떡하니 나와 있는 내비게이션을 믿고 부지런히 핸들을 움직이다 보면 도로 바닥에 ‘큰들’이라는 큰 글씨를 마주한다. ‘큰들’ 혀끝에 닿는 느낌이 참으로 정감가는 이름이다.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까지 올라서면 마치 디오라마(축소 모형을 설치해 역사적 사건이나 자연 풍경, 도시 경관 등 특정한 장면을 만들거나 배치하는 것)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서로 똑 닮은 모습을 한 작은 집들이 소담스레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다. 아기자기하고 화사한 새 동네다.

    마을 입구에는 앞으로 크게 자라날 느티나무 한그루가 환영인사를 건넨다. 왼편에 위치한 마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뒤를 도는 순간 감탄사가 새어 나온다.

    첩첩이 겹쳐 있는 산들이 이 마을 하나를 위하는 듯 시야가 닿는 곳까지 전망을 열어주고 있다. 그 끝에 지리산 천왕봉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곳은 명당이다.

    전민규 예술감독은 “풍광도 풍광이지만 사람과의 인연이 우리 큰들을 산청으로 이끌었다. 산청군과의 인연은 지난 2008년 ‘동의보감’을 집필한 의성 ‘허준’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마당극 작품 ‘의원 허준’을 산청한방약초축제 주제공연으로 선보이면서부터”라며 “그때부터 제 꿈이자 우리 큰들 단원들의 꿈을 이룰 방법이 없을까 하고 이재근 군수님과 자주 이야기를 하면서 산청을 추천해 주고 좋은 말씀을 해주셨었다. 큰들 마당극마을은 이재근 군수님의 지속적인 멘토링 덕분에 완성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연연습도 생활도 함께하면 어려울 것 없다

    극단 큰들은 1984년 진주에서 풍물·탈춤 극단으로 처음 설립됐다. 전민규 예술감독은 4년 뒤인 1988년 큰들에 입단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2년을 큰들과 함께했다.

    26년 전부터는 큰들문화예술센터의 대표를 맡아 줄곧 경영인의 삶을 살았다. 최근에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진 젊은 세대인 이규희(39) 대표가 직책을 맡고 있다.

    전 감독은 “오랜시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수십년 전부터 단원들 모두가 꿈꿔오던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게 돼 앞으로 더 좋을 일만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큰들을 수식하는 말은 다양하다. 극단 큰들에서부터 마당극 전문예술단체, 큰들문화예술센터 등 여러 가지다.

    그러나 지금 산청마당극마을에서 함께 사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는 ‘예술공동체 큰들’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산청마당극마을은 6만6000㎡ 규모 부지에 30동의 살림집을 비롯해 연습과 식사를 함께하는 다목적복합공간, 하우스동인 목공작업실이 있다.

    큰들은 지난해 가을 산청군에 새 보금자리인 ‘산청마당극마을’을 짓고 50여명의 단원과 가족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올해 2월에는 마당극마을에 새 둥지를 튼 이후 처음으로 새생명이 탄생하는 경사도 맞았다. 갓난둥이 외에도 4~5살 어린이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가족들이 한 식구처럼 살고 있다.

    매일 함께 연습하고 같이 공연하는데도 이렇게 공동체를 이뤄 한 마을에서 살아가려는 이유는 뭘까. 전 감독은 “사실 처음에는 함께 공연하는 사람들끼리 마음도 잘 맞고 함께 있는게 너무 재밌고 좋으니 ‘나중에도 다같이 모여 살자’고 막연히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그것이 꼭 이루고픈 꿈이 되고 그 꿈을 위해 조금씩 실천해 나가다 보니 이렇게 현실이 됐다”며 “극단이라기 보다는 공동체의 개념이 더 크기 때문에 ‘가족 같은’ 정서적 유대감이 주는 안정감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단원들은 마을 전체가 다 이모, 삼촌이니 육아 부담도 크게 던다”고 말했다.


    ◇일본·라오스 등 아시아 국가와 적극 교류

    큰들의 예술적 영향력은 국내에 머무르지 않는다. 큰들은 창립 65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 문화예술 감상협회 ‘로온’과 지난 2006년부터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로온’은 도쿄와 홋카이도, 우베, 히메지, 가코가와 등 50곳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회원은 100만 명에 이른다. 회원들은 일정 회비를 내고 예술을 배우거나 정기 음악회를 열며,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문화와 교류활동을 하고 있다.

    우연히 큰들의 마당극 공연을 접한 ‘로온’ 회원들은 2007년 여름 직접 산청군을 찾아와 큰들로부터 사물놀이를 배우기도 했다.

    전 감독은 “당시에 65명의 일본인이 휴가를 내고 산청군을 방문했다. 이들은 황매산청소년수련원에서 3박4일 동안 먹고자며 사물놀이를 배웠다”며 “이때의 인연으로 우리 큰들이 일본으로 초청을 받아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마당극 공연을 했다. 이후 지금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45회에 이르는 마당극 순회공연을 진행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큰들은 어떻게 하면 한국적 정서를 가득 담은 마당극을 일본관객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 대사의 70% 이상을 일본어로 바꿔 공연하는 도전을 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전 감독은 “짧은 대사들을 최대한 일본어로 바꿔 공연을 진행하니 관객과의 소통이 가장 큰 매력인 마당극의 장점이 살아났다. 당시에 하루 2회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1700석 공연장이 매회 모두 다 꽉 찼었다. 지금도 그때의 감동과 기쁨이 생생하다. 그때 예술공연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 사람 사이의 진실된 만남과 교류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만남과 인연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일까. 10여년 전 고등학교 3학년이던 ‘무로하라 쿠미’씨는 큰들과 마당극의 매력에 빠져 큰들에 입단, 지금까지 큰들의 국제교류를 맡아 추진하는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큰들은 지금도 매년 2~3차례 정기적으로 ‘로온’과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아직 만남이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큰들의 해외 활동은 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일본, 중국과의 교류를 비롯해 지난 2011년 라오스 물 축제인 풍물공연 참여, 2018년 오스트리아 초청공연 등 외국 공연을 통해 다양한 국가들과 국제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삼대가 함께하는 예술인 마을 되길

    서로 기대 살며 진짜 공동체를 이룬 큰들이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상황이 녹록치 않다. 연간 100회 수준의 왕성한 활동을 하던 큰들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용 연습실과 약 150석 규모의 실내공연장, 사무실과 의상·소품실 등 마당극마을에 있어야 할 공간들을 아직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단원들이 저마다 방도를 찾아 보탬이 되고는 있다지만 쉽지 않은 눈치다. 그러나 전 감독은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희망을 말한다.

    그는 “예전처럼 따로 살았다면 요즘 같은 때 더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든지 함께하는 가족들이 있으니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우리에게는 18년 이상 지지와 성원을 보내 주시는 후원회원 등 2000명의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곧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전 감독은 “큰들이 36년이 됐다지만 이제 겨우 청년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이제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니 생활기반이 안정되고 더 나은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시기에 접어든 것”이라며 “우리 큰들은 지금 아이를 키우는 단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손자 손녀와 함께 공연도 하고 생활도 할 수 있는 예술과 삶의 공동체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윤식 기자 kimy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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