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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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우리의 가야를 세계 속의 가야로 (중) 잊힌 왕국을 되살리다

철기문화·해상교역 꽃피웠던 500년 역사의 고대국가
서기 42년 가락국 시초로 562년까지 유지
6가야국 체제…삼국과 한반도 한 축 이뤄

  • 기사입력 : 2020-10-14 08: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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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야사에는 두 가지 건국신화가 전해진다. 하나는 가야산신 정견모주와 하늘신 이비가가 두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형 뇌질주일은 대가야 시조 이진아시왕이 되고, 동생 뇌질청예는 금관가야 시조 수로왕이 됐다는 대가야 중심의 건국신화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전한다. 또 하나는 김해 구지봉에 6개 황금알이 내려와 6명의 동자가 깨어났는데 그중 가장 먼저 깬 동자가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되고 나머지 다섯 동자가 다섯 가야의 왕이 됐다는 금관가야 중심의 건국신화로 삼국유사에 전한다.

    기록자료보다 설화로 우리에게 익숙한 가야사는 그동안 잊힌 왕국으로 불리며 주목받지 못했지만 한국 고대사와 고대 한일관계 등을 풀 중요한 열쇠로 재조명 고 있다. 부족한 문헌기록을 대신할 많은 가야사 유적·유물을 발굴, 보존하고 연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13호분 유물 출토 현장.
    함안 말이산 고분군 13호분 유물 출토 현장.

    ◇가야는 어떤 나라인가= 가야는 서기 42년 김수로왕이 김해지역에 가락국을 건국한 이후 경남·북 지역에 차례로 5가야가 건국됐으며 6가야 중 대가야가 멸망한 서기 562년까지 520여년간 이어진 한반도 고대국가로 알려져 있다.

    문헌기록에서 확인되는 가야사는 기원전후 한반도 남쪽 해안지역에서 발원, 6세기 중엽 멸망했다. 삼국유사와 가락국기는 6가야사(김해 금관가야·함안 아라가야·고성 소가야·창녕 비화가야·경북 고령 대가야·성주 성산가야·상주 고령가야)를 전하고 있고, 삼국지나 삼국사기, 일본서기 등을 통해 12개 이상의 가야국이 독자적 역사를 구축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세기까지의 전기 가야는 김해지방을 중심으로 부산(동래), 창원, 마산, 함안, 고성, 사천, 진주 등에서 형성됐으며 철기문화와 원거리 해상교역을 통해 발전했다. 5세기 이후 후기 가야는 고령 대가야와 함안 아라가야 중심으로 경남의 합천, 거창, 함양, 산청, 진주, 의령, 하동, 전라도의 진안, 장수, 임실, 남원, 광양, 순천 등에서 전개됐고 백제와 신라 사이 교섭을 통해 유지했다.

    532년 김해 금관가야가 신라에 의해 멸망했고, 562년에 고령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제국이 멸망했다고 가야사의 끝이 기록돼 있다. 가야의 역사는 짧게는 소국이 급성장하는 3세기 후반부터 6세기까지 300여년, 길게는 소국이 성립하는 기원전후 시기부터 500년 이상 이어졌다고 본다.

    별자리가 새겨진 함안 말이산 고분군 13호분 뚜껑돌 모습. 가야인들의 천문사상을 엿볼 수 있다.
    별자리가 새겨진 함안 말이산 고분군 13호분 뚜껑돌 모습. 가야인들의 천문사상을 엿볼 수 있다.

    1500여년 전 유구한 역사를 가지며 한반도 고대국가의 한 세력으로 고대사의 한 축을 이뤘던 가야가 그동안 잊한 왕국으로 역사 속에 잠들어 있었던 이유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에 비해 가야사를 실증할 수 있는 문헌자료가 부족하고 가야사를 중심으로 한 기록물이 없기 때문이다.

    가락국기는 단편적이고 설화적이며, 가야사가 아닌 삼국과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쓰여진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지, 일본서기 등의 고문의 관점상 한계 탓에 가야의 발전과정보다는 신라와 백제의 주변, 지역사 또는 소국사, 일본(왜)에 종속된 존재로 치부돼 왔다.

    하지만 한국 고대사뿐 아니라 신라의 성장과정 고대 한일관계 등을 제대로 복원하는데 가야사가 열쇠를 쥐고 있다는 데 전문가와 역사학자 등의 이견이 없다. 옛 가야지역이 일본 야마토 정권의 국외 지배지라는 등의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하는 방법은 가야사를 제대로 조명하는 것이다.

    남재우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고대사 교육은 삼국 중심이었고 교과서에서 가야사 내용은 적다. 이 때문에 국민적 관심도도 낮고 경남지역민조차 가야라는 인식을 가지지 못했고 관련 교육도 잘 안됐다”면서 “(가야사에 대한 교육이) 공교육에서 이뤄져야 했는데 그동안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는데 그쳤다. 하지만 가야사는 한국의 고대국가의 다양한 발전상을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다”라고 강조했다.

    남재우 교수는 “국정과제 채택과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가야유적을 잘 보존·관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면서 “다음 세대들이 가야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야지도

    ◇가야문화유적 발굴 현황= 삼국에 비해 기록이 적은 탓에 남아있는 가야 유물, 유적이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고, 이를 통해 가야사의 진면목을 밝히려는 노력이 지속돼 왔다.

    1970년대 낙동강유역 개발과정에서 가야 고고자료가 발굴됐고, 가야를 주체로 한 가야사 연구는 1980년 이후부터 시작됐다. 가야사에 대한 인식 전환을 이끈 것은 바로 고대사가 기록된 문헌을 재해석, 재검토하는 시도와 김해, 함안, 창녕, 고령지역을 중심으로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가야 유물·유적이 발굴, 주목받으면서부터다.

    특히 대형 고분군과 그 안에 있던 토기, 무기 등으로 가야의 문화, 정치사회적 성장과 발전, 대외교류 등을 추정할 수 있다. 가야고분군과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의 중요성이 큰 이유다.

    경남지역의 가야유적 학술조사는 2017년 이전 연간 10여건에 불과하던 것이 문재인 정부의 가야사 연구복원 국정과제 채택 이후 연평균 50여건으로 급증해 2018~2020년 동안 전체 150건 이상의 학술조사가 실시됐다.

    학술조사의 대상은 지정, 비지정문화재 할 것 없이 그간 학계에서 꾸준히 주목해 온 가야유적이며, 이를 통해 가야사를 새로 서술할 정도의 굵직한 발굴 성과를 올리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가야사 연구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목곽묘 및 청동화살촉 출토 위치
    김해 대성동 고분군 목곽묘 및 청동화살촉 출토 위치
    김해 대성동 고분군 청동제화살촉 출토
    김해 대성동 고분군 청동제화살촉 출토

    ◇눈여겨볼 가야 유물·유적= 현재까지 발굴된 도내 가야유적 중 가야문화의 특성과 우수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유하리 유적, 함안 말이산 고분군과 가야리 유적, 창원 현동 유적, 창녕 교통·송현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과 삼가 고분군, 진주 수정봉 고분군, 통영 팔천곡 고분군, 거제 방하리 고분군, 의령 유곡리 고분군과 유곡산성 등이 꼽힌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마갑총 출토 말갑옷과 둥근고리큰칼, 합천 옥전 고분군 M3호분 출토 장식대도 4점과 금귀걸이 3쌍 등은 보물로 지정됐고, 김해 대성동·양동리 고분군 출토 목걸이 3건 등은 지난 9월 보물지정 예고에 이어 11월 지정 예상된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마갑총 출토 둥근고리큰칼
    함안 말이산 고분군 마갑총 출토 둥근고리큰칼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최근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4세기 금관가야 귀족묘의 발굴을 통해 가야의 위상과 국제성을 보여주고 있다. 청동제 그릇과 청동제 화살촉, 통형동기 등이 고대 중국, 일본과 교류를 증명해준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13호분은 5세기 아라가야 전성기 최대 규모 왕릉으로 가야시대 고분축조 기술을 규명하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무리한 고적 조사 피해 및 왜곡된 가야사를 재조명할 사료로 중요성이 크다.

    별자리가 새겨진 뚜껑돌로 가야인들의 천문사상을 엿볼 수 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45호분 상형토기
    함안 말이산 고분군 45호분 상형토기

    45호분은 아라가야 최초 고총고분으로 말이산 고분군의 변화·발전과정을 보여주는 학술자료이고, 이곳에서 출토된 집모양, 배모양 등 상형토기는 당시 아라가야 가옥, 선박 등을 복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고대 창녕 정치체의 최고 지배층 고분군으로 5~6세기 가야에서 신라로 전환돼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현장이 공개된 63호분은 도굴 흔적이 전혀 없이 온전히 발견돼 주목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창녕읍 퇴천리 토기가마터는 한국의 고대 가마유적 중 최대 규모의 가야 토기가마와 10여 차례의 생산공정이 확인된 첫 사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금껏 한 차례도 조사되지 못했던 비지정 가야유적으로 꾸준한 학술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창원 현동 유적 배모양 토기
    창원 현동 유적 배모양 토기

    창원 현동 유적은 4~5세기 전반 중소형 목곽묘 중심의 아라가야권 최대 규모 고분으로 가야시대 항해용 선박을 본따 만든 국보급 배모양 토기가 출토돼 주목을 끌었다. 이는 유선형 선체와 선박의 세부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해 대외교류를 기반으로 성장한 가야의 해양 문화를 밝힐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창원 현동유적의 다양한 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전 ‘가야의 또 따른 항구, 현동’이 13일부터 2개월간 창원시립마산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김희진 기자 likesky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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