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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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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대한 각서 -이성복

  • 기사입력 : 2020-08-20 08: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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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의 남쪽 바다 십자성과 야자수는 노래 속에 있

    다 진한 박하향과 망고향 흐르는 노래 하얀 조개껍질

    같은 섬들 공벌레처럼 미끄러지는 통나무배들 그 뒤

    로, 수시로 끓는 납덩이 같은 노래의 추억은 해저 화

    산처럼 폭발한다 진흙을 싸 발라 구운 원숭이 두개골

    처럼 이번 생의 붉은 털이 다 빠지고도 남을 노래, 그

    러나 노래가 알지 못하는 이번 생의 기억은 시퍼런

    강물이 물어뜯는 북녘 다리처럼 발이 시리다


    ☞시인의 시집 ‘래여애반다라’에는 ‘노래에 대한 각서’ 외에도 시, 눈, 생, 죽음에 대한 각서 등이 있다. 이런 단어에 각서가 붙으면 각서에 대한 뜻을 국어사전에서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아직 각서를 쓰지 않고도 여기까지 온 것은 다행일까? 너무 미지근한 삶으로 일관한 것일까?

    요즘 우리는 노래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특히 트로트 열풍에 빠져 있다. 그만큼 폭발해야 할 기억들이 많다. 올여름도 노래가 가능한 추억 속에 잘 보존되었을까? 영원히 끝나지 않을 노래들, 원숭이 두개골을 진흙에 싸 발라 구워내듯 생의 붉은 털이 다 빠져도 계속될 노래이다. 그러고도 다 부르지 못할 기억이 있다고 한다. 아, 생의 내밀함이여! 구구절절함이여! 시퍼런 강물이 물어뜯듯 남몰래 아파하는 또 다른 생이 있음을…. 유희선(시인)

    이한얼 기자 leeh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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