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순간의 빛 - 김행숙

  • 기사입력 : 2020-07-23 08:01:17
  •   

  • 그리고 식탁에 수박과 식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당신이 잔인해 보여. 그리고 당신은 더없이 우아한 여성인데

    검은 씨. 붉은 바탕. 당신과 같군. 화병에는 꽃과 강아지 풀이

    성스러운 것. 상스러워지는 기분과 통해. 잘못되어가는 것들의

    기쁨처럼 걷잡을 수 없는

    그것을 조금 전에 당신은 식욕으로 표현했잖아.

    식탁에서. 식탁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이지러지는

    그림자가 없는 정오의 아스팔트에서. 바탕색은 검고 한가운데서

    활활 타오르는 당신. 가장 뜨거운 머릿속에서 벌써 다 벌어진 일은?


    ☞수박을 닮은 그것! 칼을 대자 순간, 쩍 갈라지며 제 속을 다 보이고 만 것, 수습하기엔 걷잡을 수 없는 것, 성스러움과 상스러움이 순간적 공간 이동으로 번쩍 교차하는 것…. 시인은 친절하지 않네요. 느닷없이 이상하고 모호한 감각을 깨워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느끼게 하고 있어요. 감정적 비약이 큰 심리극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시인의 경험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머릿속이든, 실제이든 가리지 않습니다. 한 점 그늘 없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앗! 꼭지가 도는 순간 다 벌어진 일이 되기도 합니다. 최대한 피하는 것이 상책일지도 모르겠어요. 오래전에 사라진 풍경이 한 번씩 떠오릅니다. 수박 한 귀퉁이를 삼각형으로 정교하게 베어 잘 익은 속을 확인했었죠. 요즘은 두들겨 보는 정도로 안부를 묻습니다. 지금 그곳, 살만하십니까? 참을 만큼 잘 참으셨습니까? 활활 타오르고 있다고요! 유희선(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