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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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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풍수지리] 해남윤씨의 산실, 녹우당

  • 기사입력 : 2020-07-03 07:5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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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도 806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녹우당길을 만난다. 녹우당길에서 남송천을 지나면 녹우당(綠雨堂)의 관문격인 백련지가 나타난다.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1587~1671)의 4대조이자 해남윤씨 어초은공파의 파조(派祖)가 된 어초은 윤효정(1476~1543)이 백련동(지금의 연동)에 터를 잡은 이래 지금까지 600여 년 동안 해남윤씨의 산실로 자리 잡은 곳이다. 윤효정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야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 해남읍 근교에 위치한 백련동을 택했다고 한다. 이는 산천의 기운이 좋아야 훌륭한 인재가 배출된다는 ‘인걸지령론(人傑地靈論)’과도 그 맥락을 같이한다.

    필자가 만난 어초은공 18대 종손인 윤형식 서영대학교 이사장은 여든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상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가문과 후손의 발전을 위해 분투하는 호기로운 장수(將帥)였다. 사랑채에 걸려 있는 녹우당 현판은 윤선도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의 절친한 친구였던 옥동 이서가 썼다. 당호를 ‘녹우’라 지은 연유는 집 앞의 500년 된 은행나무 잎이 바람이 불면 비처럼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설과 뒷산의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바람이 불 때면 녹색의 빗소리가 들린다 하여 지었다는 설이 있지만, ‘늦봄과 초여름 사이 잎이 푸를 때 내리는 비’가 선비의 절개와 기상을 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설득력을 갖게 한다.

    사랑채는 효종이 대군 시절 사부였던 고산에게 경기도 수원에 지어준 집을 1668년(현종 9년)에 해체해 해상으로 목재를 운송해 지었다. 오늘날 녹우당을 문화와 관광의 명소로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이가 고산 윤선도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녹우당과 그 주변은 입지 결정부터 비보(裨補·부족한 것을 보충해 생기를 돋움)까지 풍수적인 측면을 고려한 길지(吉地)임은 분명하다. 녹우당의 주봉이며 진산(鎭山)인 덕음산(427m)을 위시해 좌청룡과 우백호가 감싸고 있으며, 적절한 높이의 안산(호산·193.4m)을 갖췄다.

    터의 길흉을 살필 때는 멀리서 산세와 수세를 살펴본 연후에 가까이 다가가 결론을 도출하는 원칠근삼(遠七近三)의 기법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은 지엽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로 올바른 풍수 감정을 위한 중요한 단계이다. 녹우당의 좌·우측 계곡물은 터의 기운을 단단히 다지면서 내려와 고택을 포함한 터 전체를 크게 휘감은 남송천과 만나며, 남송천은 사행(蛇行)으로 흘러가 해남천과 합류한 후 하나 된 해남천이 삼산천과 최종 합수해 바다로 빠져나감으로써 연동리 일대의 지기(地氣)를 북돋우고 있다. 게다가 청룡과 백호가 관쇄(關鎖·입구나 문을 잠금)를 잘 하고는 있지만, 인공 연못인 백련지를 둠으로써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재차 방지했다. 가까이는 백련지를 조성하고 멀리는 남송천이 있어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전형적인 명당의 틀을 갖추었다.

    녹우당의 앞쪽에는 좌장격인 은행나무를 비롯해 여러 수종의 나무를 빽빽이 심고 옆쪽에는 대나무를 심어 흉풍과 살기(殺氣)를 막도록 했다. 수구(水口)에 해당하는 솟을대문은 여느 고택과는 달리 작은 문이어서 고산의 높은 풍수 식견을 알 수 있었는데, 수구란 물이 나가는 통로가 되며 물은 또한 재물도 되고 생기도 되므로 가능한 좁게 해 쉽게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주산(뒷산)인 덕음산은 돌무더기가 많고 풀이 없는 곳이 많으며 계곡의 찬 기운도 감돌기 때문에 이를 막고자 비자나무숲을 조성했다. 녹우당으로 뻗은 덕음산의 용맥(龍脈·산줄기)은 넓으면서도 기운이 강했다. 녹우당은 가장 적절한 위치인 용진처(龍盡處·용이 최종 머문 자리)에 있으며 동일 선상에는 윤효정의 묘가 있으므로 조상의 음덕으로 후손들이 잘될 수 있는 명문 고택이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화산풍수·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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