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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친정엄마, 이상숙

[사람속으로]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친정엄마 이상숙 창원 ‘따쉼(가칭)’ 원장
참담한 삶 보듬어 당당한 삶 이끄는 ‘친정엄마’

  • 기사입력 : 2020-05-27 21: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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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희 쉼터 이름이 신문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창원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따쉼’(가칭) 이상숙(60) 원장의 첫마디였다. 그는 지면을 통해 시설명이 언급되면 가해자들을 자극하고, 피해자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시설명이 공개됐을 때 가해자들이 주소를 추적해서 시설에 들이닥치는 사례가 빈번했다고 한다. 그와 ‘따쉼’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포털 사이트 등에 시설명 삭제를 요청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역에서 20년째 운영하고 있는 시설이라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사실상 조금만 공을 들이면 찾아낼 이름이긴 하지만 쉼터 이름을 보호해야 할 이유는 명백했다. 가칭을 사용하기로 약속하고, 가정폭력 상담 활동가 1세대로 20년간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친정엄마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친정엄마라 불리는 이상숙 따쉼(가칭) 원장이 피해자 보호시설 앞마당 흔들그네에 앉아 활짝 웃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친정엄마라 불리는 이상숙 따쉼(가칭) 원장이 피해자 보호시설 앞마당 흔들그네에 앉아 활짝 웃고 있다.

    -‘따쉼’은 어떤 곳인가?

    △가정폭력 생존자(그는 피해자들을 생존자로 불렀다)와 그 자녀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보호시설이다. 시설에 오는 생존자들에게 의식주뿐만 아니라 상담과 심리 치료, 법률 지원, 의료, 교육 등 자립을 위한 지원도 제공한다. 입소 기간은 1년이다. 그리고 1년 후에는 각종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주거와 취업 등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과 후원을 통해 운영하며, 연간 수십 명의 생존자들이 쉼터를 거쳐간다. 쉼터 시작은 1991년 천주교 마산교구 마산가톨릭여성회관 옆 작은 건물이었다. 당시 여성회관에서 폭력 피해 여성들을 상담했는데, 당장 갈 곳이 없는 이들을 위해 쉴 곳이 필요했고, 장기간 갈 곳이 없는 이들을 위해 쉼터까지 만들었다. 경남 최초 긴급피난처였던 쉼터는 1999년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로 인가를 받아 운영하다가 2015년 지금의 장소로 신축 이전했다. 이전 후 가장 좋은 점은 10세 이상 남자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부분 쉼터는 한 방에 두 가구가 지내기 때문에 남자아이의 경우 10세 미만만 입소가 가능하다. 10세 이상 남자 아이들은 청소년 시설로 가는 일도 있어서 안타까웠다. 우리 쉼터는 총 22명이 살 수 있고, 8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20년째 원장직을 맡고 있다. 어떤 사명감으로 일을 하나.

    △시설에 거주했던 한 아이가 대학생이 돼 몇 년 만에 명절을 맞아 찾아왔는데, 5만원을 흰 봉투에 넣어서 후원금이라고 들고 왔다. 500만원 보다 귀하게 느껴졌고,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마웠다. 생존자들이 폭력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찾아 독립에 성공할 때, 또 그의 아이들이 잘 자란 걸 지켜볼 때 더 큰 힘을 얻는다. 사실 나는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고,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생존자들이 쉼터를 친정으로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많은 피해자들이 실제 친정에서는 피해를 토로하고 위로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관련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나는 평범한 가정의 말 잘 듣는 아이였다. 부모님 뜻대로 부산대학교 사범대에 입학했는데, 공부가 재미가 없어서 영남대로 옮겨 심리학을 전공했다. 아마 그때부터 마음 깊은 곳에 저항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1997년 가톨릭여성회관에서 심리학 전공자를 채용한다고 해서 취직했던 게 이 일의 시작이었다. 가정폭력이란 단어도 없었던 시절이다. 당시 ‘아내 구타’라는 표현을 썼는데, 말 그대로 상담을 위해 회관을 찾아 온 여성들의 상황이 너무도 참혹했다. 상담자 대부분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멍이 들어 있었다. 인간의 존엄이 훼손된 모습이었지만, 사회에서는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스스로는 가장 많이 성장한 시기였다. 이들을 위해 처참한 현실을 알려서 사회의 잘못을 바꿔야 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상담자들의 신체를 사진으로 찍어서 가정폭력의 심각함을 알리기 시작했고, 23년을 가정폭력 관련법과 지원제도를 늘리기 위해 현장에서 싸웠다. 지금은 가정폭력 형태가 많이 변했고 제도나 인식도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다.(웃음)

    -일이 힘들 때는 없었나?

    △사실 가정폭력 상담일을 시작하고 3년 만에 일을 그만뒀었다. 그땐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의욕에 넘쳐서 365일 밤낮없이 일을 했는데, 3년 만에 번아웃 증후군(탈진 증후군)이 온 거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상당했고, 매일 같이 위협적인 가해자들과 싸우고 각을 세웠다. 그것을 밖에서 해소하지 못하고 내 아이에게도 가해자 욕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당시 10살이던 딸아이가 엄마의 삶에 자신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쉼터 식구만 가족이고, 자기는 가족이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피해자들의 삶을 사느라 내 삶이 없었던 거다. 아이와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을 돌아보니 이미 번아웃 상태였다. 1년간 쉬면서 번아웃된 스스로와 가족들을 돌보다 보니 다시 가족과의 관계도 회복되고 에너지가 생기더라. 가톨릭여성회관에서 다시 출근 제의를 받았고, 상담일과 시민사회운동 일을 병행하면서 삶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찾았다. 지금은 아이가 자랑스럽게 생각해 준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겐 어떤 지원이 가장 필요하나.

    △그래서 그들이 피해를 용기있게 폭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는다. 수사기관에서 폭력을 입증하는 과정도 힘겹고, 엄마니깐 아이들을 위해 참아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도 남아 있다. 이혼을 하더라도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 외에는 모든 환경이 열악해진다. 폭력사건이 발생해도 대부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집을 떠나야 하고, 이혼 과정이나 양육권 문제에서도 법적으로 불리한 부분이 많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이 불리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고, 한부모 가정도 잘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만들어져야 한다.

    -가정폭력은 왜 발생하는 것 같나? 현장에서 생각한 해결책이 있다면?

    △가정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그 초점이 가정보호가 아닌 피해자의 안정도모와 인권보장이 돼야 한다. 또 가정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이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십 년간 이 일을 하다 보니 아동학대가 결국 가정폭력을 비롯한 각종 사회폭력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더라. 아동 권리의 문제를 가장 최우선적으로 해결하면, 이것이 가정폭력 문제의 해결고리가 된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열심히 달렸다. 노후엔 어떤 삶을 꿈꾸나?

    △지금까지는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추구해왔고, 최근 10년 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퇴직 후에는 후배 가정폭력 상담 활동가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 후배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나가고 있는데, 상담사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상담에 임하느냐는 피해자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들을 위해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다. 또 우리 쉼터 직원을 비롯한 종사자들이 제대로 처우를 받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가정폭력 쪽 일을 한다고 하면 좋은 일이라고 하는데, 전문적인 일로 인식되고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 인식도 변화시키고 싶다.

    -가정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늘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같은 말을 한다.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하다. 아직도 많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폭력을 가하고 당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을 가정 내 문제, 사랑의 문제로 인식하면 안 된다. 신체적인 폭력 외에도 경제권을 통제하거나 언어, 정서적인 폭력도 폭력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글·사진=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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