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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아이들의 ‘놀 권리’와 놀이사회- 김겸섭(경상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0-05-25 20: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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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저녁으로 아파트 옆 강변산책로를 걷는다. 지난 몇 달 동안 휑했던 길 위에 사람이 제법 늘었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일정한 성과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식당이나 상점에도 손님이 늘었다. 재난지원금이 가져다준 변화일 것이다. 성숙한 시민 의식을 발휘하여 선진적인 K-방역의 모델을 만들어온 것처럼 자발적 생활 속 거리두기 역시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거리두기’를 강조하면서 소홀해진 관계들도 차츰 회복되기를 바란다. ‘사회적 연대’, 즉 ‘사회적 관계 맺기’는 포기할 수 없는 시민사회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할 시간도 가졌으면 좋겠다. 여전히 텅 빈 놀이터를 지날 때마다 아이들이 어디 가서 무엇을 하나 궁금해 하면서 든 생각이다. 안 그래도 아이들의 ‘놀 권리’에 인색한 한국사회에서 ‘안전’을 핑계로 집에 갇혀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하다. 2020년의 쓸쓸했던 어린이날은 아이들에게 잊히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을지 모를 일이다. 언론에서는 아이들의 비대면 수업이나 수능을 앞둔 고3 학생들의 등교 일정, 등교 이후의 안전수칙 같은 뉴스로 넘쳐난다.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학습권 못지않게 중요할 수 있는 미래 시민들의 여가나 놀이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건강’과 ‘안전’에 있어 놀이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오로지 성과와 성장만을 중시해온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재확인하는듯하여 씁쓸하다.

    역사적으로 사회적 대재난은 더 나은 사회를 설계하는 단초를 제공한 바 있다. 대감염의 시간이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미 1957년 “어린이는 즐겁고 유익한 놀이와 오락을 위한 시설과 공간을 제공받아야 한다”고 ‘어린이헌장’은 명시한 바 있다. 놀이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몸과 마음 건강을 향한 자연스러운 본능이기 때문이다. 놀이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문제해결능력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회성 함양의 보고라는 점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것이 제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정부 차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추진하겠노라고 밝힌 점이다. 이전 정부들보다 훨씬 진전된 정책방향이 제안되고 있어 기대되는 바가 크다. ‘아동의 놀 권리를 위한 가정, 학교, 지역사회의 노력 강화’라는 정책적 비전은 고무적이다. 정부 주도보다는 지역사회의 문제당사자들로부터 실천 방안들을 마련해보자는 결기가 느껴진다. ‘지역사회 놀이혁신 추진’, ‘다양한 놀이 공간 및 프로그램 확산’, ‘창의적 놀이를 통해 잠재력을 키우는 학교’ 등의 추진과제는 그러한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대부분 부모들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사교육의 덫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를 위해 놀이의 중요성을 알려줄 교육과 캠페인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은 훌륭하다. 앞으로 다양한 관련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홍보될 것이다. 놀이학과 놀이사회에 관심을 가져온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뛴다.

    문제는 이러한 비전에 걸맞은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이다. 이번 정책의 핵심 주체가 지역임을 명심하자. 특히 놀이의 주체인 아동과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할 수 있는 창구는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정부 발표 후 경남도의회와 도청에서도 관련 조례를 마련하고 실천 방안들을 구상하려는 움직임도 확인된다. 하지만 이것이 일회적 유행이나 사업으로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참에 도의 선제적 대응을 주문해본다. 시민사회가 주도하고 전문가와 지자체가 협력하는 ‘경상남도 놀이·여가 싱크탱크’ 구성을 제안한다.

    김겸섭(경상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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