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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사람이 먼저다- 유승규(창원신월고 전 교장)

  • 기사입력 : 2020-05-18 20: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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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승규 창원신월고 전 교장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인다.’라는 캠페인이 가슴에 와 닿는다. 3월 25일부터 민식이법[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가중처벌] 시행으로 스쿨존만큼은 서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2021년 4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할 ‘안전속도 5030(일반도로 50㎞/h, 이면도로 30㎞/h)’는 이미 몇몇 지자체에서 계도 기간을 거쳐 집중 단속하는 등 속도 하향은 시대적 흐름이다.

    스쿨존에서 제한속도를 어겨 범칙금 통보를 받았다. 처음에는 잘못보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방 및 좌우를 살피면서 천천히 운전하는데, 뒤차가 틈을 주지 않고 바짝 붙어 부딪칠 것 같은 불안감에 나도 모르게 속도를 올렸다. 단속지점을 통과하면서 ‘아차’ 했는데, 뒤를 보니 뒤차는 조금 떨어져 천천히 오고 있었다. 뒤차는 단속지점에서만 제한속도를 지키는 얌체운전자였다. 저런 얌체운전자 때문에 구간 단속이 필요하다는 속 좁은 생각이 언뜻 들기도 했다.

    도로교통법에는 보행자 보호 규정이 자세히 나와 있으며, 운전면허 딸 때 모두 학습한 내용이다. 문제는 ‘사람이 먼저’라는 교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운전대만 잡으면, 도로는 자동차의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그래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멈칫 하면 잽싸게 빠져 나가는 운전자를 종종 볼 수 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왔다. 평소처럼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천천히 멈춘 운전자가 미소를 지으면서 먼저 가라고 손짓한다. 운전자의 미소와 손짓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내 머리와 가슴에 살랑살랑 타고 들어왔다. 진양조장단으로 찬찬히 흘러 따뜻한 질감인 ‘아직도 세상은 살 만하구나!’가 선명히 드러났다. 하루 종일 행복 전도사가 되어 행복바이러스를 마음껏 뿌렸다.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고도 억울하다고 생각한 내가 부끄럽다. 따뜻한 운전자의 잔상은 ‘사람이 먼저’라는 교통문화를 마음 속 깊이 각인시켰다. 그날 이후로 보행자에게 무조건 우선권을 준다. 뒤차가 빵빵거려도 신경 쓰지 않는다. 또 다른 행복전도사가 더 많은 행복을 퍼뜨렸으면 좋겠다.

    유승규(창원신월고 전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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