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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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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미안하고 고맙소- 유승규(창원신월고 전 교장)

  • 기사입력 : 2020-05-11 20: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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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승규 창원신월고 전 교장

    당분간 교육에서 한 발 물러서 있으려 했으나, 교육에 대한 강렬한 인연의 끈이 ‘촉석루’에서 뿜어 나와 애써 외면하려는 내 마음을 기어이 끌어당겼다. 15일은 퇴임 후 처음 맞이하는 ‘스승의 날’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가슴 속 깊이 묻어둔 ‘나는 스승다움을 잃지 않았는가?’를 다소 헐겁고 엉성하더라도 조심스럽게 끄집어 올려본다.

    나를 지배한 8할의 정서는 긍지와 자부심이고, 밑바닥에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숨죽이고 있었다. 퇴임 후에는 숨죽인 감정들이 풀어져 세상으로 흘러 나왔다. 이제 겨우 보인다. 비수처럼 내리 꽂히는 상처의 화살이 아니라, 마음을 흥건하게 적셔주는 사랑의 하트다.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말할 용기가 생겼다.

    퇴임 1년을 앞두고 부임한 학교의 일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학생 중심의 교육을 핵심가치로,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학생이 주인인 학교, 특정 사람에 의해 움직이기보다 시스템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알량한 자존심이 발목을 잡았다. “곧 퇴임할 사람이 어떻게 학교를 경영한다 말인가?”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 숨길 일이 아닌데도 솔직하지 못하여 화를 키웠다. 9월 부임하여, 1년만 근무한다는 사실을 숨겼고, 신학기에도 계속 숨길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교장선생님 그럴 수 있습니까?”, “최소한 우리 아이들 졸업은 시켜야죠?”라는 말에 가슴이 서늘했다. ‘너도 교장이냐!’라는 소리로 들렸다. 가슴을 쳤다. 이런저런 변명이 더 초라할 것 같아 어떤 감정 표현도 못했다.

    부끄러움을 상실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부끄러운 행동을 창피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도 창피함을 모르는 것보다 떳떳하게 밝히는 것이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는 최소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스승의 날, ‘스승다움을 잃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을 통해 수오지심, 염치가 있는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어 다행이다.

    “그때는 정말 미안하고 이해해 줘서 고맙습니다.”

    유승규(창원신월고 전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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