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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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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갑’지게 살자- 오영민(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20-04-23 20: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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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쁨과 슬픔이 함께 올 때는 어느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할까? 살면서 이런 감정 참 낯설다. 나의 기쁨은 늘 내 것이 아니여서였을까. 내 몫은 늘 힘겨움이었고 설움이었다고 자책만 했던 시간들을 지나와서였을까. 익숙하지 않은 감정 하나가 솔잎처럼 자꾸 찌른다. 이런 흉터는 참 싫다.

    감정이란 게 본능에만 충실하여도 오해가 쌓이고 뜻이 다르면 반대편이 생긴다.

    세상은 강자가 있으면 상대적 약자가 생긴다. 살아가는 모든 것에 등수를 매기고 위아래가 있고 짓밟거나 짓밟히거나 그러면서 사람들은 1등만을 기억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갑’처럼 산다. 왜 몰랐을까 나는….

    어느 골목길 보도블록을 뚫고 피어난 민들레 한 송이처럼, 아주 예쁜 벽돌집 담장을 자연스레 타고 오르는 담쟁이처럼, 오랜 시간 나무의 썩은 뿌리와 그루터기에서 생명을 끌고 온 영지버섯처럼, 살고자 하면 사는 게 인생 아니던가? 나는 그림보다 더 선명한 꿈을 그리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조각보다 더 정교한 글을 쓰고 싶었고, 사진처럼 오래 남을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아직 단 한 권의 자서전도 써 내려가지 못하고 그 자서전의 겉표지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다. 너무 느린 걸음으로 이 길을 걷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 돌아보는 여유도 가지면서, 채우지 못한 명함의 뒷장에도 신경을 좀 쓰면서 살아볼까 한다.

    ‘말’의 힘과 ‘혀’의 날카로움, 그것을 안다면 누구든 함부로 한 말들과 언어는 때론 사람의 심장을 찌르는 칼날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나에게서 짓밟힌 것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래를 보지 않고 걸었다면 분명 풀 한 포기, 개미 한 마리쯤 나의 발밑에서 ‘을’처럼 구부러지고 부스러지지 않았을까? 값은 하고 살자.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살아있는 오늘을 다시 못 올 어제처럼은 살지 말자. 웃자. 웃음이 헤퍼서 누군가가 바보 같다고 비웃을지언정 웃어버리자. 그러면 눈물쯤이야 좀 마르지 않을까? 무엇인가를 가져보겠다고 줄 서는 일 따위 하지 말자. 내 몫이라면 분명 내게 올 것이다

    4월 15일 치른 총선, 4월의 혁명과 같았던 그 시험의 정답은 O.X 가 아니지 않았던가! 수많은 ‘갑’들이 생겨나고 그 시험은 공격도 수비도 하지 못한 ‘을’들의 패배로 끝이 났다.

    승자인 그들이 너무 겸손해도 오만으로 보이는 나의 시선이 가슴 아프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는 이겨야 할 상대도 없다. 모두가 5천만의 국민만 바라보고 한 길만 걸어가길 기원하면서 나의 선택에도 박수를 보낸다. 늦은 귀가길, 늘 아래를 보며 누군가의 힘든 발걸음을 빛으로 비추이는 가로등 그 아래 살짝 기대서 본다. 매번 승진에서 밀려난 남편의 어깨도 가끔은 이곳에 기대 머무르지 않았을까? 걷다가 기댈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것도 행복인 것을, 눈부시다 밤하늘. 아직 세상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한 오늘,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갑’처럼은 살지 말자. 아주 값지게, ‘갑’지게 한 번 살아보자.

    오영민(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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