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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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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봄의 유전자- 조은길(시인)

  • 기사입력 : 2020-04-16 2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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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봄에는 천주산 진달래꽃을 한 번도 못 보고 지나갈 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 ‘외출 자제하기’란 말이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인데다, 얼마 전에 다친 다리의 후유증 때문에 아직은 높은 산은 조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도 당연하여 좋고 나쁘고를 의식조차 하지 않았던 일상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니 ‘가장 좋은 때는 소중한 줄 모를 때’라는 어느 시인의 시구가 명언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나는 진달래꽃을 좋아하지 않았다. 유년시절 봄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던, 마구 꺾어서 입안이 시퍼렇게 먹어보거나 꽃술 자르기 놀이나 해보던 너무나 흔하고 만만한 꽃이었고, 한때는 의식적으로 진달래꽃을 피하기까지 했는데… 매년 진달래꽃이 필 무렵 열리던 화전놀이 날 어머니 연배의 젊은 아낙들이 진달래꽃 자옥한 앞산 언덕매기에 올라가서 화전을 안주로 막걸리를 나눠마시고는, 땅을 구르며 노래하고 춤추다 서로 얼싸안고 엉엉 울다 토하기까지 하던, 평소와는 완전 다른 어머니 모습에 놀라 어머니 치맛자락에 매달려 울었던 그 슬프고도 무섭기까지 하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날 그녀들의 새봄 한나절의 일탈이 남존여비사상이 철통같았던 그 시절 층층시하 시집살이의 설움과 울분을 털어내는 마음의 대청소의식이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그날만은 아무리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도 며느리의 일탈을 눈감아 주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연대한 일종의 여성해방운동 같은 것이었다.

    시를 쓰면서 그동안 머릿속에 주입되어있던 선입관을 버리고 진달래꽃을 다시 보니, 보라도 분홍도 아닌 어중간한 꽃빛깔이며 주위 초목들과의 일말의 조화도 꾀하지 못한 듯 앙상하고 어수선한 알몸 끝에 돌올한 얇디얇은 꽃잎의 배열도 예쁘다기보다 가련해 보였고 불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나를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채근하는 진달래꽃마니아들 손에 이끌려 찾은 천주산 천주봉 진달래꽃은 이런 나의 편견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고 말았다.

    봄 햇살이 은가루를 쏟은 듯 환한 천주봉 살찐 이마를 에워싼 진달래꽃무리에 눈이 닿는 순간 꽃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환각에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내가 결점으로 느꼈던 진달래나무의 앙상하고 어수선한 가지는 서로 얼싸안고 꽃잎으로 덮어준 듯 보이지 않고, 실바람에 분홍인 듯 보라인 듯 촘촘한 진달래꽃잎의 일렁임은 마치 천주산이 진달래꽃 화관무를 추는 듯 눈이 부셨다. 태양의 속옷이 있다면 저런 빛깔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 저건 태양의 속옷이다. 추워와 외로움을 견디다 못한 겨울 천주산이 천주봉(天柱峯)을 타고 올라가 태양의 속옷을 훔쳐 왔으리라. 봄의 유전자를 찾아 몰려온 겨울사람들 앞에서 꾀꼬리 장단에 멋들어진 진달래꽃 화관무 한 판을 꿈꾸며 석 달 열흘 진달래꽃을 접었을 것이다. 외로움을 접었을 것이다.

    올해도 천주산 진달래는 한 몸처럼 얼싸안고 꾀꼬리장단에 화관무를 추는 봄날인데, 호랑이 같은 시어어니도 며느리를 풀어준다는 환하고 따뜻한 봄날인데, 코로나19사태 이전의 소중한 줄 모르던 일상으로 돌아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이 애물단지 같은 봄마저도 간절히 머물고 싶어 애태우다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진정한 봄의 유전자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

    조은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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