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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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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 난국, 한 문상객의 상념- 오하룡(시인)

  • 기사입력 : 2020-03-29 20: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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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 전 한 저명한 지인이 부인상을 당했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의 피해지수가 치솟던 무렵이다. 이 지인의 입장에선 이보다 난처한 경우가 있을까 싶었다. 오후에 임종하여 당일에는 미처 빈소가 마련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지인은 평소의 청렴한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어 메일과 문자로 통지된 내용에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문상은 사절 합니다” 하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빈소는 마련됐는데 문상은 사절한다니 이게 무슨 말이나 되는 소린가 하는 의아심이 들었으나 사실은 사실이었다.

    조의금이나 화환 사절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경우는 더러 본 경험이 있으나 문상 자체를 사양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이 사회 통념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예년에 없던 악성 전염성 질병으로 해 하필이면 이 지인이 난처한 처지에 이른 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저리는 일이었다.

    필자는 퇴근시간에 맞춰 상가에 들렸다. 예상대로 썰렁한 분위기였으나 먼저 와 있던 몇 분의 문단 지우들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고 상주도 퍽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그때야 서울에 사는 고인의 아드님과 며느리 등 가족이 도착하고, 그들이 상복을 입음으로써 빈소 기능이 가동되어 우리는 합동으로 문상을 하고, 가족이 왔으므로 우리는 물러 나왔다.

    이튿날도 한번 들렸으면 싶었으나 오히려 문상을 기대하고 있지 않은데 들리는 자체가 상가를 성가시게 하지나 않을까 하여 그만 두었다. 그런데 발인 날이 되었을 때는 참석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압박했다. 가족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피하라는 눈치를 보였으나 마스크를 하고 완전 무장을 해 9시 발인시간에 맞춰 빈소에 들렸다. 벌써 발인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맨 뒷자리에 엉거주춤 서 있는 자체가 무슨 이질적인 존재처럼 여겨졌다. 발인제에는 직계가족 말고 외부 인사로는 필자밖에 보이지 않아서였다. 상주는 물론 고인도 잘 알뿐 아니라 두 분 다 연상이어서 필자는 당연하게 가족의 제례 끝 순서에 고인에게 재배를 올렸다. 그런데 막상 운구가 시작되었는데 운구할 사람이 부족했다. 상주가 관을 들어야 할 판이었다. 팔순이 넘은 필자도 끼이는 수밖에 없었다. 상주는 지역대학에서 20여년 넘게 제자를 길렀다. 뿐만 아니라 지역문단에도 단체장을 맡는 등 많은 역할을 했다.

    만일 시국이 이런 난감한 때가 아니라면 상주의 인품을 보나, 그의 잘 자란 사회적 중견 위치에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자녀들로 보나 그 어떤 상가보다 문상객으로 넘쳐났을 것이다. 그러나 발인제 분위기는 아무리 보아도 허전하고 아쉬움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전염병이 창궐하는 극한의 상황이더라도 이 어려운 처지의 지인을 위해 의협심 비슷한 감정이라도 갖는 사람이 그렇게 없는가 하는 생각이 한 동안 가시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계기로 “장례문화의 간소화로 가는 계기를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나오기는 하지만.

    오하룡(시인)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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