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5일 (목)
전체메뉴

[촉석루] 나만의 퀘렌시아- 오경조(원불교 신창원교당 주임교무)

  • 기사입력 : 2020-03-23 20:34:32
  •   

  •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싸우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퀘렌시아는 회복의 장소이다.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는 곳, 본연의 자기 자신에 가장 가까워지는 곳이다.

    삶의 길목에서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 정신적으로 피폐할 때, 지금처럼 뜻하지 않은 재난상황을 겪을 때, 그때가 바로 자신의 퀘렌시아를 찾아야 할 때이다. 누구나 예외일 수 없는 그 순간을 만났을 때 지혜롭게 맞이하려면 평소 자기만의 퀘렌시아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공간, 가슴 뛰는 일,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 명상, 기도 등 내면의 안식처를 발견하는 이 모두가 우리 삶에 퀘렌시아 역할을 한다.

    막힌 숨을 트이게 하는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생의 에너지가 메마르고 생각이 거칠어진다.

    삶은 자주 위협적이고 도전적이어서 우리의 통제 능력을 벗어난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때 우리는 구석에 몰린 소처럼 두렵고 무력해진다. 그럴 때마다 자신만의 영역으로 물러나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추스르고, 살아갈 힘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숨을 고르는 일은 곧 마음을 고르는 일이다.

    오후 9시 방안 가득 휴대전화 알람이 울린다. ‘절수행’이라는 제목의 알람이다. 매일 절수행으로 몸과 마음을 고른 후 이어지는 9시 30분 알람에는 진리와의 만남인 기도를 이어간다. 나만의 퀘렌시아로 들어가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렇게 진실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나를 지키고 내 삶을 사랑할 수 있는 퀘렌시아가 된다.

    스스로를 치유하고 온전해지려는 의지는 이미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 의지에 평소 꾸준히 나만의 퀘렌시아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해지는 순간, 온전함을 잃지 않는 나로 설 수 있다.

    오경조(원불교 신창원교당 주임교무)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