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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산티아고 순례길- 이종철(창원시보건소장·성균관대 의대 명예교수)

  • 기사입력 : 2020-02-17 20: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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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3월, 나와 아내는 오랫동안 소망해왔던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우리는 프랑스 남부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해 산티아고로 가는 800㎞의 코스를 택했다.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과 스페인 서부의 갈리시아 산맥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여행의 삼분의 일은 육체를, 다음 삼분의 일은 정신을, 마지막 삼분의 일은 영혼을 단련한다고들 한다.

    나는 하루하루를 걸으면서 육체와 정신의 밸런스를 유지하고자 했다. 힘들 때는 쉬어가는 여유를, 목적지에 도착하면 정신적 안식을 찾는 성취감과 균형을 이루기를 바랐다. 힘든 산길을 걸은 후 마을에 들러서는 만나는 성당마다 꼭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외롭지 않은 자기자신을 발견하고 싶었다.

    순례길 중 잊히지 않는 길이 있었다. 골목 어귀에 쓰여져 있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길(Calle Forzosa)’ 이었다. 따라 가 보니 마을의 공동묘지였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항상 동행하였단다’ 하시면서 그동안 그 사람이 살아 온 길을 보여주셨다. 기어 다닐 때는 하나님과 그의 발자국까지 모두 여섯 발자국이, 커서는 네 발자국이, 늙어서 지팡이를 짚게 되자 지팡이까지 다섯 발자국이 있었다. 그런데 중간중간에 두 개의 발자국만 있는 것을 보고 그가 하나님께 ‘하나님, 그때는 왜 저와 같이 계시지 않으셨나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것은 네 발자국이 아니라 네가 힘들 때 내가 너를 업고 간 내 발자국이란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는 왜 산티아고길을 갔을까? 순례길을 걸으며 나는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답을 얻고도 싶었다. 정의란 인간의 잣대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는 변하지 않는 잣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정년 퇴임까지 지내온 내 인생을 돌아보고, 그동안 살면서 받은 상처를 용서하고, 치유하고, 나 또한 남에게 준 상처를 되짚어보며 회개하고 싶었다. 카미노를 걸으며 나는 비로소 나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다. 삶 속에서 슬픔과 아픔을 느끼고 있다면 카미노를 걸으며 스스로를 위로하라고 하고 싶다.

    이종철(창원시보건소장·성균관대 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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