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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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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14) 창중지서(倉中之鼠)

- 창고 속의 쥐

  • 기사입력 : 2020-02-04 08: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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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정치가인 이사(李斯)는 진시황(秦始皇)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공훈을 세운 사람이다.

    그는 젊었을 때 유명한 사상가 순자(荀子)의 제자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중국은 각 제후(諸侯) 나라로 분열되어 수백 년 동안 전쟁이 지속되었으니, 백성들의 생활은 너무나 힘들었다.

    이사는 현실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였다. 어느 날 변소에 갔다. 변소에는 사람의 똥을 먹고 사는 쥐가 있었는데, 야위고 더럽고 파리하고 사람이나 개가 나타나면 도망가기에 바빴다.

    어느 날 곡식 창고에 들어갔더니 거기도 쥐가 있었는데, 살이 쪄서 피둥피둥하고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달아나지도 않았다. 개는 아예 창고에 들어오지도 못 했다.

    이사는 쥐를 보고 느꼈다. “능력보다는 자리가 중요하구나. 다 같은 쥐건만 변소의 쥐와 곡식 창고의 쥐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구나.”

    이사는 곧 순자에게 하직을 고했다. 기대가 되던 제자라 순자가 말렸다. “지금 공부 그만두면 안 돼. 공부 더 해서 도(道)를 얻어야지.” 이사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여유가 없습니다.” 순자가 “공부 그만두고 어쩌려고?” 이사는 “각 나라의 임금들에게 유세(遊說)를 해서 제 뜻을 펴보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순자는 속으로 “공부도 덜 된 게 유세는 무슨 유세?”라고 생각하며 탐탁잖게 여겼다.

    이사는 본래 초(楚)나라 사람이었다. 천하의 대세를 보니 진(秦)나라가 가장 기대해 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진나라로 가서 실권자 여불위(呂不韋)의 부하로 들어가서 진시황과 연결이 되었다.

    여불위가 진시황의 미움을 사서 제거된 뒤로 여불위의 역할을 한 사람이 이사였다. 이사는 진시황에게 나머지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시킬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한편으로는 전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많은 돈으로 각 나라의 요인들에게 뇌물을 주어 각 나라 조정을 분열시켜야 합니다”라고 했다.

    어떤 나라의 지도층이 분열되면 명령 계통이 안 서서 그런 나라 군대는 힘을 못 쓴다. 이사의 건의는 주효하여 마침내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였다. 영토만 통일한 것이 아니고 나라마다 모양이 달랐던 한자를 통일하고, 도량형기를 통일하였다. 사상통일을 위한다며 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문화 말살정책도 썼다.

    진시황이 세상을 떠나자 간신 조고(趙高)와 짜고 바보 아들 호해(胡亥)를 황제로 앉혔다. 그 뒤 권력을 독점하려는 조고에게 말려 반역죄로 형장에 끌려나가 허리가 잘리고 삼족을 멸하는 형벌을 받았다.

    이사는 아들하고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다시는 우리 고향에서 너와 누런 개를 끌고 거닐 수 없구나!”라고 탄식했다.

    그가 터득한 도리란 것이, 공부를 깊이 해서 깨우친 바른 도리가 아니고, 창고나 변소의 쥐를 보고서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는 방법이었다. 그 결과가 비참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 倉 : 창고 창. * 中 : 가운데 중.

    * 之 : 갈 지. * 鼠 : 쥐 서.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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