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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바른말 좀 씁시다- 유행두(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20-01-30 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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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관 앞에 던져졌던 종이 신문 대신 핸드폰만 켜면 지구촌의 따끈따끈한 소식을 금방 알 수 있는 포털 사이트. 앞다퉈 실시간 뉴스가 올라온다. 메인 페이지를 여는 순간 ‘배민’,‘범투본 관리직원’,‘檢 견제 공수처법’,‘母 돈 빌렸어’,‘사개특위 위원 사보임’. 이게 무슨 말이지?

    내용을 읽어보니 ‘배민’은 배달의 민족을, ‘범투본’은 범국민 투쟁 본부를 줄인 제목의 일부였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줄임말을 넣은 낯선 제목에 한자어 표기가 수두룩하다. 한두 글자 더 넣는다고 기사에 영향을 주는 건지, 엄마 또는 어머니라는 쉽고 간단한 말을 두고 굳이 母라고 쓰고, 검찰 대신 檢이라는 한자를 사용하면 더 유식해 보이는 건지.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사전을 검색해서 찾아보고 이해하라는 건지.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줄임말을 당연한 듯 사용하고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숟가락보다 핸드폰을 먼저 잡는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의 대화를 엿듣다 보면 말끝마다 욕이 달리는 건 예사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조어 또한 많아졌다. 음식마저도 퓨전음식이 인기를 끌고 거리의 간판이나 텔레비전 광고는 무엇을 광고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없는 광고가 허다하다. 텔레비전 뉴스 아래에 흘러가는 자막 또한 자극적인 낱말이 수두룩하다. 말 속에 영어를 끼워 쓰는 건 기본. 우리말도 외래어도 아닌 이상하게 쓰는 말들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대체할 말이 없어서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뉴스 기사마저 아무렇지 않게 줄임말이나 한자어를 사용해도 괜찮은 걸까. 이해되지도 않는 낱말을 만들어 놓고 호기심을 자극해서 이목을 집중시켜야만 할까. 그러면 그 기사의 내용이 고급스러워지는 걸까. 말과 글의 가장 큰 역할은 소통이다. 그러잖아도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 극과 극에 닿아 있는 대한민국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구세대를 비하하는 여러 낱말이 횡행하면서 서로 배척을 조장하는 데 인터넷 기사 또한 한몫을 담당한다.

    기사는 글을 대표하는 언론이며, 기자는 누구보다도 바른말을 사용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다. 사실적인 내용으로 수집한 자료를 독자들에게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알려줘야 하며, 다수가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의 글로 나타내어야 한다. 세계화시대에 우리말, 우리글만을 고집할 수만은 없는 일이지만 버젓이 사용할 수 있는 바른 우리말을 두고 사전에도 없는 줄임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점은 깊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지게 되어 프랑스어 수업을 못 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담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한 구절이 오래 기억에 남아있는 까닭이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노예가 되었다 하더라도 자기 나라 말을 굳건히 지키고 있으면 언제든 노예 상태에서 풀려날 수 있다.’

    모국어를 잃을 뻔했던 우리의 경험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 글이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렷하고 과학적으로 인정받은 자랑스러운 글이다. 한글날이 가까워 오면 잠깐 우리말이 어떻고 하면서 반짝 호들갑을 떨다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평소에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새겨볼 일이다.

    유행두(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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