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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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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확증편향성의 위험- 이인경(인제대 교수)

  • 기사입력 : 2020-01-21 20: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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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가 자꾸만 보채면서 울어대자 엄마가 어떻게든지 아이를 달래려고 애를 쓴다. “쉿! 자꾸 울면 호랑이 온다. 호랑이가 와서 잡아간다!” 그러나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울어댈 뿐이다. 엄마는 드디어 비장의 무기를 꺼내든다. “여기 곶감이 있다!” 아이의 울음은 순식간에 그쳤고 평화로운 고요가 찾아왔다. 그때 마침 사냥할 거리를 찾아 마을로 내려왔던 호랑이는 이런 모녀의 대화를 엿듣고 깜짝 놀라고 만다. ‘아니! 도대체 곶감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나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단 말이냐!’ 이후로 호랑이는 곶감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줄행랑을 쳤다는 이야기이다.

    문학치료학을 강의하면서, 이 이야기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보게 됐다. 우선 체험을 통한 깨달음의 중요성이다.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곶감의 달콤함이야 먹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겠지만, 호랑이를 본 적도 없는 어린아이가 어찌 그 무서움을 알까? 호랑이라는 위협적 존재에 대한 공포로 어린아이를 통제하려던 엄마의 시도는 아이의 눈높이를 벗어난 것이었다. 내게 무서운 존재는 아이들에게도 역시 그럴 거라고 믿어버리는 일반화의 오류였던 것이다. 호랑이 역시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있었다. 자신은 강력한 힘을 지닌 위협적인 존재이므로 공포심을 이용해서 언제나 타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호랑이는 왜 곶감이 그리도 두려웠을까? 이제껏 호랑이가 경험해온 삶이란 모든 문제가 폭력성과 약육강식의 법칙 안에서 해결되는 세상이었다. 그러니 호랑이를 능가할 만한 정도라면 얼마나 막강한 무력을 지닌 존재란 말인가.

    우리는 모두 자신의 경험치 안에서 외부적 상황을 인식하고 그런 자신의 판단을 굳게 믿는 확증편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경험한 세계만이 진리라고 믿거나, 내 판단기준이 세상의 보편적 기준일 거라고 확신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다. 어찌 되었거나 곶감의 달콤함을 즐기던 저 어린아이도 미리 학습을 해두어야 할 것이다. 호랑이와 대면하는 것은 정말 두렵고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언젠가 실제 경험을 통해 직접 깨닫게 되는 사태는 막아야 하니까.

    이인경(인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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