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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누가 명(命)을 거역하나- 이종구(김해본부장·국장)

  • 기사입력 : 2020-01-14 20: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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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 때 팔도도원수 김명원의 부장(부원수) 신각(申恪)은 한강전투에서 패한 후 유도대장 이양원을 따라 양주로 도망갔다가 이곳에서 전열을 정비한 뒤 해유령에서 왜군 70명을 죽였다. 왜란 발발 이후 싸움다운 싸움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조선군의 입장에서 첫 번째 승전고였다. 그러나 한강에서 패한 뒤 임진강으로 도망갔던 김명원은 신각이 자신을 따르지 않고 양주로 간 것을 알자 “신각이 명령에 따르지 않고 도망쳤다”는 장계를 올렸고, 신각은 명령불복종으로 참형에 처해졌다. 신각은 임란 최초 승전을 올린 장수였지만 도원수의 명(命)을 거역(拒逆)한 항명(抗命)죄로 참형에 처해진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항명죄로 참형에 처해질 위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9일 국회에서 검찰총장의 의견 수렴 절차 없이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강행해 검찰청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에 대해 “제가 위반한 것이 아니고, 윤 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했다”고 말했다. 검찰총장이 자신에게 항명했다는 것이다. 추 장관은 “인사위원회 개최 전날에도 총장에게 의견을 내라고 했고, 당일에도 일정을 취소한 채 6시간을 기다렸으나 총장은 구체적인 인사안을 갖고 오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관례적으로 법무부가 먼저 인사안을 가져오고, 그 안에 대해 총장이 의견을 내어왔다고 반박하고 있다.

    추 장관의 ‘거역’ 발언이 나오자 여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윤 총장을 압박하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그냥 넘길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고 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공직자의 자세로서 유감스럽다. 법무부 장관은 필요한 대응을 검토하고 실행하라”고 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심지어 “본분을 망각한 채 사실상 항명한 것. 엄히 다스려야 할 중대한 공직 기강해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임금의 명(어명)을 어긴 대역죄인을 추국하는 왕조시대 의금부 분위기다. 추 장관은 야당 의원 시절이던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던 윤 총장이 중징계당했을 때 “수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검사들 다 내쫓는다. 한 사람만 쳐다보니 이것을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한다”고 했다. 자신에게 그대로 돌려줘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추 장관은 또 검찰에 “비직제 수사조직은 시급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장관의 승인을 받아 설치하라”고 특별지시했다. 윤 총장이 특별수사팀을 다시 꾸려 현 정부 관련 수사를 계속 이어나갈 가능성까지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추 장관, 당신이 국민의 명을 거역한 것. 국민이 준 권력을 사유화한 당신들이 도둑”이라고 했다. 오죽했으면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도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지휘할 수는 있지만 명령 복종 관계는 아니지 않은가. 왕조시대같이 ‘내 명을 거역했다’는 표현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5일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우리 윤 총장님”이라 부르면서 “청와대든 정부든 또는 집권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선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렇다면 현 정부 권력형 비리를 엄정히 다루던 검사들을 한직으로 내몬 추 장관은 문 대통령의 명을 거역하고 항명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누가 명을 거역하는지 모르겠다.

    이종구(김해본부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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