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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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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개성 시대의 라쿠카라차- 김미숙(마산문협회장)

  • 기사입력 : 2019-12-23 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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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쿠카라차(La cucaracha)’라는 노래는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다. 은은하면서 감미로운 선율로 한국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제목 라쿠카라차의 뜻이 ‘바퀴벌레’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약간 허탈감을 느낀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스페인의 오래된 민요지만 스페인을 몰아내기 위한 멕시코 혁명의 중심에 이 노래가 있었다. 가사는 여러 번 바뀌었다고 한다. 제목이 바퀴벌레가 된 이유는 혁명군들이 비 오는 날 우중충한 판초우의를 입고 줄지어 행군하는 모습이 바퀴벌레를 연상시킨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뜬금없이 라쿠카라차를 들먹이는 이유는 요즘 그 비슷한 광경을 아침저녁으로 보기 때문이다. 아침 등교시간이면 검은 롱패딩점퍼를 입은 학생들이 줄지어 학교로 간다. 여러 색깔이 어울리는 가운데 검은 색도 있다면 심플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죄다 검은 색이다 보니 거리마저 우중충해지는 느낌이다.

    요즘 학생들 학습량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학교에서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돌고 또 돌다 보니 얼굴빛마저 어둡다. 솔직히 나는 이 상황이 혼란스럽다. 도대체 왜 모두가 똑같은 시꺼먼 긴 점퍼를 입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한때 똑같은 학생복이 학생들의 개성을 죽이고 정서적으로 획일화한다는 반발이 있었고, 그 때문에 학생복이 사라진 적도 있었다. 결국 계도가 어렵다는 이유와 빈부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는 이유 때문에 학생복 착용이 다시 시작되었다. 물론 아직도 학생복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개성과 멋이 없다는 이유로 배격당한다. 그래서 길이를 자르고 폭을 좁히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신만의 개성 있는(?) 학생복으로 만들어 입는다. 이러니 혼란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획일화된 학생복은 싫은데 스스로 골라 입어도 되는 겨울점퍼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똑같은 검은 패딩점퍼 일색이다.

    한때 ‘등골브레이커’라는 옷이 있었다.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만든 검은색 짧은 패딩점퍼다. 한 벌에 수십만 원 하는 그 옷을 사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창피해서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한다는 이유로 빠듯한 한 달 생활비에서 거금을 떼어 사준다고 등골브레이커라고 불렸다. 부모 등골 빼먹는다는 뜻이다. 지금은 그게 길이만 더 길어졌을 뿐이다.

    바야흐로 창의적 개성시대다. 한 사람의 번득이는 개성과 남다른 창의적 생각이 산업이 되고 기업을 키우는 시대다. 창의와 개성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상상하는 과정에서 훈련된다. 그러자면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무엇인가를 자신의 안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환경과 교육이 필요하다. 1+1=2라는 생각은 이 시대에서는 이미 죽은 답이다. 1+1은 3도 되고 100도 되며 0도 될 수 있는 것이 지금 시대 아닌가.

    시대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우중충한 옷을 단체로 입고 일렬로 줄지어 같은 곳으로 걸어가는 획일적인 ‘라쿠카라차’ 환경에서 살고 있다. 똑같이 입고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움직이는 환경에서는 개성과 창의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학생들이 입은 옷은 학생들이 선택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 다른 작용이 없었을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아이들을 획일적 선택밖에 없는 환경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거리에서 학생들의 컬러풀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거리에서 아이들의 컬러풀한 웃음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색다른 생각을 하는 세상이 되려면 우리의 젊은이들이 컬러풀한 상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김미숙(마산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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