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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풍수지리] 정경부인 밀산박씨 묘가 ‘명당’인 이유

  • 기사입력 : 2019-11-15 07:5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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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시 진북면에 조부모와 부친 묘, 묘 아래에 집을 짓기 위해 마련한 터와 생가 터의 감정을 의뢰받아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야반산(342.4m)을 주산(뒷산)으로 한 조부모와 부친 묘는 좌청룡(좌측 산)과 우백호(우측 산)를 갖추었고, 우백호가 안산(앞산)이 되도록 좌향(坐向)을 놓음으로써 묘를 향해 부는 흉풍을 막도록 했다. 조부모 묘는 산줄기의 측면에 썼지만 무득무해(無得無害·득도 없고 해도 없음)한 곳으로 무난한 편이었으며, 부친 묏자리는 기실 산줄기의 정기를 제대로 받은 곳에 위치해 있기에 자리를 선정한 이가 누군지 물어보니 의뢰인이 직접 정한 자리라고 했다.

    의뢰인은 부친의 자리를 정할 때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산의 위치를 여러 번 보고난 후 택했다고 한다. 묏자리를 잡을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것 중의 하나가 해당 산을 멀리서 일곱 번 살펴보고 가까이서 세 번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풍수에서는 ‘원칠근삼(遠七近三)’이라 한다. 지관(地官)들조차 간과하기 쉬운 점을 의뢰인이 실천한 것에 놀랍기도 했지만 부친에 대한 ‘지극한 효성’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주산인 야반산은 골이 많은 현군사(縣裙砂)여서 자칫하면 골에 쓰기 쉬운 위험성이 다분히 있기에 더욱더 신중을 기해 자리를 정해야 하는 곳이므로 멀리서 여러 번 관찰해야 함은 필수이다.

    부친 묘는 두 자 정도 좌측으로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좌향도 잘 놓았고 지기(地氣·땅기운) 측정 결과 터의 기운도 좋은 길지(吉地)였다. 묘 아래의 집을 지을 예정인 터는 의뢰인이 생각한 위치보다는 위쪽의 지기가 훨씬 좋아 그곳을 권했는데, 조선시대에는 자리가 좋은 묘 아래쪽에 집을 지어 발복(發福)을 한 사례가 많았다. 생가 터 또한 묘 주변 산줄기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배산임수(背山臨水·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의 생기(生氣)가 충만한 곳이며 안산은 노적봉(露積峯·노적가리 형상의 산)으로 재물을 취할 수 있는 터였다.

    진주시에 종중 묏자리를 구할 목적으로 미리 봐둔 후보지 네 곳에 대한 감정을 한 적이 있다. 첫째 장소는 도로와의 접근성은 좋았지만 산줄기가 끊어진 이른바 맥(脈)이 끊어진 곳이어서 제외시켰다. 둘째 장소는 산줄기가 튼실하고 좌우요동을 치는 생룡(生龍·살아있는 용)이 차분히 안착을 한 곳으로 좋은 곳이었다. 셋째 장소는 좌청룡과 우백호가 터를 감싸 안아 생기가 모여 있으면서 용호의 만나는 지점에는 저수지(이를 ‘진응수’라 함)가 있는 터였으나, 감정 결과 땅속에는 날카로운 돌이 수없이 박혀 있는 곳으로 자연이 인간을 교묘하게 속이는 곳이었다. 넷째 장소는 땅심이 약해 산줄기가 지저분하고 땅파임이 많았으며, 산줄기가 멈춤이 없이 생기가 빠져나가는 곳이어서 숙고 끝에 둘째 장소를 적극 추천했다. 문중의 발전과 후손의 발복(發福)을 기대할 수 있는 터였다.

    완주군 용진면에 조선 8대 명당 중의 하나인 정경부인 밀산박씨 묘가 있다. 봉서산을 주산으로 한 산줄기는 좌우요동과 상하기복을 하면서 혈처를 맺었다. 밀산박씨는 박침의 부인으로 밀양박씨 박중손의 조모이다. 명당을 많이 봐왔지만 이처럼 인작(人作·사람이 만듦)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원형을 보존한 곳을 잘 보지 못했다. 주산은 문필봉(文筆峯)으로 학자가 배출되는 터이며, 좌청룡은 다소 부실한 편이나 바깥 청룡이 튼실하게 받쳐주고 있고 우백호는 당당하고 기품이 있다. 안산은 적절한 높이에서 유정한 모습으로 있으며 안산 뒤의 조산 또한 안산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는 듯 견고하게 받쳐주고 있다. 좌향은 축좌미향(丑坐未向)으로 남서향이며 청룡과 백호 사이에 있는 양쪽 계곡수가 묘의 앞쪽에서 합수(合水)를 함으로써 혈판(묘와 그 주변)을 단단하게 한 후, 재실인 봉서재(鳳捿齋) 옆으로 흘러간다. 봉서재는 수구막이의 역할을 하여 혈판의 땅심을 더욱더 북돋우며 주산과 좌청룡, 우백호, 안산과 수구막이까지 일체가 되어 혈판을 보호하고 있다. 게다가 전순(前脣·묘 앞의 절하는 자리와 그 주변) 끝에는 박힌 돌이 둘러져 있어 봉분의 생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니 ‘명당’이라 하기에 가히 손색이 없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화산풍수·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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