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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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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보며- 양미경(수필가)

  • 기사입력 : 2019-11-14 20: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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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평소 TV 여행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얼마 전 〈세계 테마 기행〉 ‘아웃 오브 아프리카, 모로코’ 편을 보면서 처음에는 저게 연출된 장면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2년 만에 왔다가 하루 만에 가는 건 너무해요.” 화면 속 한국 남자를 보며 아랍계 젊은 여성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7~8세쯤 되어 보이는 소녀도 당신이 다시 와서 너무 행복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던 아랍 노인이 여행자에게 다가와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사랑한다는 건 좋은 거예요. 모두 행복해지니까요.”

    리포터인 한국인 여행자도 얼굴이 붉어지더니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의 눈물은 아랍인 가족들처럼 헤어지는 아쉬움의 눈물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따뜻한 사랑에 감동한 나머지 터져 나온 눈물이다.

    여행 작가인 한국인은 2년 전에도 그들의 환대를 받으며 하루 머물렀고, 이번에는 방송사 여행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왔다가 아프리카를 떠나는 마지막 날 들른 것이다. 그 두 번의 짧은 만남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아쉬워한다는 게 내 정서로는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보여주는 애정 가득한 말과 시선들이 진심으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리포터가 눈물을 흘릴 때쯤 내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그들이 둘러앉은 식탁엔 방문자를 환영하는 듯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그러나 식탁의 진수성찬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의 확인이 더 행복했으리라. 그들을 보면서 나는 저런 상황이 온다면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솔직히 자신은 없다.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것은 거친 밀림의 생존 방식과 먹고 먹히는 정글의 법칙이다. 그리고 원시적인 삶, 미개한 문화 등 그런 이미지로 해서 아프리카는 문명의 시각으로 보면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이다. 야생의 포식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친 공격적 본능을 가졌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한다. 그러나 영상을 통해 본 그들의 마음은 따뜻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문명의 땅에서 편리함을 누리며 다양한 문화혜택 속에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낯선 이방인이 찾아온다면 그들만큼 환대하고 환영할 수 있을까. 진심의 크기만큼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옆집에 사는 이웃과도 인사 나누기가 어색한 게 지금의 우리들 모습이 아닌가.

    ‘우리’라고 할 것도 없다. 먼저 나 자신부터가 그렇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 공동체이므로 이웃과 가깝게 지내야 한다면서도 그렇지를 못한다. 시장이나 아파트에서 이웃을 만나면 고개만 까딱하고 얼굴을 돌려버린다. 이건 뭔가를 잃어버리고 사는 거나 다를 바 없다. 나 어릴 때만 해도 어른이나 이웃을 만나면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거나 가족의 안부를 묻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좁은 공간에서 마주치면 어떻게 피할까를 궁리하는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선물 티켓을 SNS로 주고받는데 정작 상대를 만난 적도 없다는 데에 놀란다. 자주 보는 이웃에겐 기껏해야 목례만 하면 끝이다. 현대문명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고 더 중요한 인간성은 앗아가 버린 것 같다. 소중하게 여기던 인간미는 어디로 갔을까.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이 다다를 종착역은 어디일까. 서로가 서로를 불편해하고 나아가 적대시하게 된다면 공동체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 터인데, 그걸 생각하면 두렵다.

    양미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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