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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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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경 기자의 문학읽기] 왕혜경,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삶에 불어닥친 불행과 승화과정 담담히 담아
1994년 등단… 교단 퇴직과 함께 첫 수필집 펴내

  • 기사입력 : 2019-11-11 07:5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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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혜경 수필가는 나이 60이 넘어 첫 책을 펴냈다. 그것도 퇴직을 하면서. 그 책이 어찌어찌 기자에게 전해졌다. ‘허투루 읽을 책이 아니다’는 평가와 함께. 왕 작가는 1994년 등단을 했지만 자신의 글을 묶는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작가의 게으른 행보를 탓하기엔 그녀의 책은 결코 무게가 가볍지 않다.

    왕 작가는 지난 33년간을 교육현장에 몸을 담았다. 진해, 창원, 마산, 진영, 물금 등지의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에서 평교사를 거쳐 교감과 교장을 지내고 올해 8월 정년퇴임을 했다. 딱딱한 훈화로 가득찬 글이겠거니 했는데,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왕 작가는 ‘처음 쓰는 책이자 마지막 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글을 엮었다고 책머리에 썼다. 굳이 그렇게 결연할 필요까지야, 하고 책장을 넘겼는데 도입부터가 만만치 않다. 첫 문장이 ‘결혼 전, 남편에겐 사귀는 아가씨가 있었다’다.


    왕 작가의 글은 ‘진솔함’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무기를 지녔다. 20대 아가씨가 쓴 글처럼 활달하고 솔직하지만 그 성찰은 섬세하다. 이혼의 아픔을 겪은 일,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 동료교사와 사랑에 빠진 일, 필연적으로 뒤따른 갈등 끝에 그와 결혼한 일, 달콤했던 신혼, 결혼 9개월 만에 바다낚시를 갔던 남편이 실종된 일, 하늘을 원망하며 울부짖었던 세월, 한동안 술로 힘든 세월을 견딘 일,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무 생각없이 산에 올랐다 20년간 전국의 산을 찾아다니며 일종의 구도의 길을 걷게 된 일…. 그녀는 이 범상치 않은 삶을 생생하게, 그러나 부드럽게 읊조린다.

    1991년부터 최근까지 하나둘 모아온 조각보 같은 글들은 한 여인이 삶에 불어닥친 불행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침내 긍정하게 되는지, 그것을 어떻게 가톨릭적인 순명(順命)으로 승화시켰는지 스스로가 아프고도 기쁘게 기록한 증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저자는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라고 말한다.

    김정대 경남대 명예교수는 이 책을 두고 ‘석공이 바위에 글자를 새기듯 신심 깊은 불자가 사경을 하듯 단어 하나 선택하고 문장 하나 만드는 데 기치진심한 흔적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정확한 평가다. 수필집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는 지난 8월 불휘미디어에서 펴냈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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