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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울산 ‘직장인 1호 아너소사이어티’ SK에너지 심필보 선임대리

나눔으로 행복 전하는 ‘흙수저 아너소사이어티’

  • 기사입력 : 2019-11-07 20: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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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 적에 쌀밥 한 번 실컷 먹어보고, 운동화를 신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수학여행 못 간 것이 한이 돼 나 자신과 약속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꼭 하겠다고.”

    울산 직장인 1호 ‘아너소사이어티’ 정회원 심필보(60)씨 이야기다. 심씨는 SK에너지(주) 석유3공장(선임대리)에 근무하고 있다. 그는 궁핍을 극복하고 나눔으로 행복을 전하는 ‘흙수저 아너소사이어티’로 유명하다.

    울산 직장인 1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한 심필보씨가 인터뷰 중 환하게 웃고 있다./지광하 기자/
    울산 직장인 1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한 심필보씨가 인터뷰 중 환하게 웃고 있다./지광하 기자/

    심씨는 2005년 모교 장학금 전달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억원가량의 기부와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기자와 만난 심씨는 어린 시절의 가난과 배고픔, 단칸 월셋방 신혼살림, 4개월 된 딸을 업고 맞벌이에 나선 아내 이야기 등을 하면서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내조와 두 딸의 응원으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참 다행이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심씨는 “나 같은 흙수저 직장인도 나누고 봉사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잠시나마 어려운 이웃을 살펴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어린 시절 가난에 한 맺혀 나눔 결심

    심씨의 어린시절은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가난과 배고픔의 설움이 더 많았다.

    가난한 농부 집안의 6남매(4남 2녀)중 다섯째인 심씨는 쌀밥과 운동화를 동경했고, 친구들과 함께 수학여행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보리밥이 먹기 싫어서 밀가루 음식이나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날도 많았다. 특히 중학교 수학여행 날은 평생 못 잊을 것이다.

    부모님 뜻에 따라 여행을 못 가게 된 그날이 마침 울산 장날이었다.

    어머니가 장에 간다며 장바구니를 역까지 들어다 달라고 해서 별 생각 없이 역에 나갔다.

    하필이면 그 시간에 친구들이 서울 수학여행을 간다고 역에 모여서 놀고 있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서럽기도 해서 길 모퉁이에 숨어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 자신과 약속을 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어려운 아이들과 이웃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반드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흙수저 직장인의 고달픔

    어려운 환경에서도 심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3개월간의 국방의무를 마쳤다.

    모 기업에 이력서를 내고 기다리던 중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잠시 방황하며 진로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에 친구들이 유공(SK에너지) 직업훈련원생 모집에 시험 보러 가자고 원서를 갖다 줘서 얼떨결에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꼭 취직을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6개월의 교육과정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덕분에 수료식 때 당당히 1등을 해서 훈련생 중 제일 먼저 1985년 3월에 입사했다.

    입사 1년여 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흙수저 직장인의 세상살이는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당시 어려운 형편 때문에 140만원으로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7만원짜리 단칸 월셋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신혼여행도 못 가서 1년 뒤 친구의 신혼여행에 동승해 제주도에 다녀왔다.

    어린 시절 겪었던 가난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아내는 4개월 된 딸을 업고 보험회사 설계사로 나섰다. 두 딸을 키우며 10년 넘게 맞벌이와 내조를 해준 아내 덕분에 내집도 마련하고 오늘날의 디딤돌도 놓았다.

    ◇인생 반환점에서 나눔 실천

    ‘가난을 탈피하겠다’는 일념으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내 인생도 어느듯 반환점 근처에 와 있었다. 그래서 마흔다섯 살이 되던 2005년부터 나와의 약속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수학여행의 아픔을 간직한 모교 농소중학교에 300만원의 장학금 전달을 시작으로 한국복지재단, 적십자, 굿네이버스, 사랑의 열매 등 여러 곳에 매월 일정 금액을 후원했다.

    하지만 두 딸이 성장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는 빚도 지고, 힘도 들고 참 어려웠다. 그래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부와 장학금 전달을 중단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직장생활 30년을 넘긴 2016년 초까지 기부한 내역을 돌아보니 7000만원이 넘었다.

    ◇직장인 1호 ‘아너소사이어티’ 탄생

    그동안 비정기적인 이벤트로 수재의연금, 세월호, 청년희망펀드 등에 기부하면서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에 늘 관심을 갖고 있었다.

    심씨는 2016년 1월 말께 울산공동모금회를 찾아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절차를 상담했다.

    설날 아내와 두 딸이 모인 자리에서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계획을 설명했다.

    먼저 아내가 “좋은 일이니 당신 뜻대로 하라”고 했고, 두 딸도 “아버지가 존경스럽다”며 박수로 찬성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한 심필보씨가 아내와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는 모습.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한 심필보씨가 아내와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는 모습.

    심씨는 2016년 2월에 5000만원, 2017년 2월에 5000만원을 납부해 울산 직장인 1호 아너소사이어티 정회원이 됐다.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17년에는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5000만원을 완납했다.

    심씨는 당시 익명으로 가입하려 생각했지만, 평범한 흙수저 직장인이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는 것을 보고 나눔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명 가입을 했다.

    실제 그의 영향으로 주변에서는 기부가 늘었고, 그가 만든 후원 동아리에도 많은 회원이 참여해 지금도 여러 곳에 후원하고 있다.

    심씨는 “사람들 대부분이 ‘있어야 하지’, ‘기부는 부자나 재벌이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기부는 형편에 맞게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자 기준도 천차만별”이라며 “재산세, 근로소득세, 사업소득세 등 세금 내는 것을 걱정하면 모두 부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회사 안팎에서 기부·봉사활동, 퇴직 후에도 계속할 것

    심씨는 SK에너지 석유3공장 ‘행복나눔 봉사단’ 180여명을 이끄는 ‘코디네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코디네이터는 구성원들이 효율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에 맞춰 연간계획서를 작성하고, 새로운 봉사처도 발굴한다. 주요 봉사활동은 전사 차원에서 독거노인 및 발달장애아동에 대해 집중지원하고 있으며, 석유3공장 자체적으로는 독거노인 배식봉사, 중증장애인 시설 봉사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또 심씨는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타인의 모범이 되는 ‘울산영웅’에도 선정돼 스토리 나눔토크 ‘꿈을 파는 강연쇼’에 출연하는 등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울산 영웅’에 선정된 심필보씨./심필보씨/
    ‘울산 영웅’에 선정된 심필보씨./심필보씨/

    이 밖에도 심씨는 21세기공동체운동 이사, 화목봉사회 이사, 치매예방센터 이사, 중구 노인복지회관 운영위원장, 석유3공장 후원동아리 회장 등을 맡아 현재까지 2억여원의 기부와 왕성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국민나눔대상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울산시장 표창 등을 수상했다.

    심씨는 “우리 모두 ‘우분트’를 항상 기억하고 생활하자”고 당부했다.

    ‘우분트’는 아프리카 빈투족의 말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좀 더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심씨는 “퇴직 이후에는 나눔의 시간이 더 많아 좋을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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