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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38) 마산 창동 독립서점 '산·책'

산책하듯 즐기는 문화놀이터

  • 기사입력 : 2019-10-03 2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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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영화, 독립출판, 독립서점 등 최근 문화계에서 ‘독립’이라는 단어를 쉽게 볼 수 있다. ‘독립’이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대중성보다는 희소성이, 주류보다는 비주류의 느낌이 든다. 이런 편협한 생각을 깨준 우리지역 독립서점 ‘산·책’을 다녀왔다. 보편타당한 가치로 책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그득했다.

    독립서점은 기존의 출판 또는 유통방식에서 벗어나 운영되고 있는 작은 규모의 서점으로, 다양한 주제를 지닌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곳을 일컫는다. 소규모 출판·유통 방식으로 꾸려가는 독립서점은 전국 500여 곳에 이른다. 현재 운영 중인 독립서점의 60%가 2016년 이후 문을 열었다. 우리지역에도 최근 독립서점이 하나둘 생겨나는 추세다.

    마산 창동 독립서점 산·책. 책방 주인의 취향과 개성이 묻어나는 다른 독립서점과 달리 새로 나온 독립서적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나온 책을 모아놓거나 중고서적을 팔기도 한다.
    마산 창동 독립서점 산·책. 책방 주인의 취향과 개성이 묻어나는 다른 독립서점과 달리 새로 나온 독립서적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나온 책을 모아놓거나 중고서적을 팔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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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창동에 있는 독립서점 산·책은 2017년 4월에 생겼다. MBC경남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독립사진작가 협동조합을 꾸렸고, ‘산책 가듯 편하게’라는 의미와 ‘살아있는 책’이라는 의미를 담아 책방을 만들었다.

    18년째 MBC경남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을 맡고 있는 운영자 박승우씨는 “주변의 강압에 의해 문을 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미디어가 여러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데 속도나 기술이 미디어의 발전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무엇보다 우리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마을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책을 그 매개로 삼았다. 책은 원시적이지만 우수한 미디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출판과 서점, 문학 역시 자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유명 작가의 소위 잘 팔리는 책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들은 누군가에겐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해 ‘그냥 책방에서 무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으로 서점을 운영하게 됐는데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책을 파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네 눈높이와 맞는 작가들이 쓴 독립서적이 제격이었다. ‘하루키’나 ‘니체’ 같은 이들의 말보다는 서툴지만 공감이 되는 나와 비슷한 이들의 책이 더 와닿아서다.

    이곳은 보통의 책방과 위치부터 다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3층에 자리해 눈에 잘 띄지 않고 접근성이 좋지 않다. 박 센터장은 오히려 그래서 더 좋다고 의외의 이야기를 내놓았다. 필요와 목적이 있는 비슷한 사람들이 찾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방에서 열린 사진 스터디 모임./독립서점 산·책/
    책방에서 열린 사진 스터디 모임./독립서점 산·책/

    계단을 오르면 다양한 포스터들이 먼저 반긴다. 프로그램이나 행사 안내 포스터 옆에 서점 현수막 디자인이 눈에 띈다. 2001년 인권영화제 포스터 그림에서 따온 것으로, 그해 인권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를 상영했을 때 가졌던 마음가짐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유리문을 열고 책방에 들어서자 비제의 카르멘 서곡이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있었다. 독립서점 치고 꽤 넓은 공간에 또 하나의 편견이 깨졌다. 박 센터장은 “전국 독립서점 중에 아마 손꼽히게 넓을 거예요. 공간을 만들 때 한쪽 구석에 당구대를 놓을까 농담할 정도였으니까요. 책으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꾸미다 보니 지금이 됐네요”라고 말했다.

    공간이 넓어서인지 책장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게 아니라 가로형 선반에 책들이 아기자기하게 비치돼 있다. 또 미디어를 다루는 이들답게 다양한 카메라가 전시돼 있다. 입구 왼쪽엔 간단한 음료를 파는 카페가 있다.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었지만 ‘북카페’로 불리는 게 싫어 제일 구석진 자리에 딱 두 테이블만 놓았다. 책이 도구가 되고 카페가 주가 되면 처음 공간을 만든 의미가 퇴색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카페 메뉴 중에 ‘맥주’가 이색적이다.

    다양한 독립출판물이 진열된 모습. 입구 왼쪽엔 카페가 있다.
    다양한 독립출판물이 진열된 모습. 입구 왼쪽엔 카페가 있다.

    홍대, 해방촌 등 핫플레이스에서 유행한 책을 보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책맥’이 가능하다. 꼭 책을 읽어야 책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지 않아도 책 속에서 무언가를 하면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메뉴에 추가했다.

    책은 자유롭게 나열돼 있지만 자세히 보면 나름의 구분이 있다. 새로 나온 독립서적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나온 책을 모아놓거나 중고서적을 팔기도 한다. 이곳에서 책을 채우는 방법은 총 세 가지다. 처음엔 운영진이 갖고 있던 책을 내놓았고 다음엔 독립출판 작가들이 직접 판매를 요청하는 경우다. 최근엔 수요가 늘면서 원하는 책을 서점에 알리면 채워놓기도 한다.

    선반 위에 다양한 카메라가 전시돼 있다.
    선반 위에 다양한 카메라가 전시돼 있다.

    산책은 책방 주인의 취향과 개성이 묻어나는 다른 독립서점과 달리 책을 가리지 않는다. 좋은 책을 선별하는 일에 대한 자격은 유일하게 독자에게 있다는 믿음에서다. 운영하는 이가 이곳을 이용하는 데 딱 하나의 에티켓을 당부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카피레프트(copyleft·공개저작권) 공간이어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어도 되지만 독립출판물은 무단으로 찍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작가들의 지적재산권을 지켜줘야 독립서점이 계속 운영된다고 강조했다.

    독립서점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커지지만 운영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워낙 마진이 안 남는 데다 책 분실률이 40%나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1만원짜리 책을 팔면 작가에게 즉시 7500원을 보내준다. 처음 책을 펴낸 작가들이 또 책을 쓸 수 있도록 격려와 칭찬, 응원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란다. 고마움을 담은 작가들의 손편지들을 입구 오른쪽에 나란히 붙여 놓았는데 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강의로 책방 운영을 충당한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이 변화무쌍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영화관도 되고 사진 스튜디오도 되며 강의실, 방송국도 된다. 책방 한쪽에 있는 넓은 공간의 쓰임이 다채롭다. 스크린을 내리면 영화를 볼 수 있고 조명과 카메라가 구비돼 있어 촬영도 가능하다.

    또 최근엔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 시민뉴스제작자 모임, 출판학교도 진행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삼삼오오 모여 인문학 강좌나 독서토론, 북콘서트도 종종 열린다. 말 그대로 복합문화공간인 셈이다.

    문화를 즐기는 ‘좋은 놀이터’라지만 성과도 있다. 3년째 이어오는 다큐멘터리 사진 강좌에서는 미디어 강사 2명을 배출했다. 우연한 기회에 재능을 발견해 지역에 드문 미디어 인적 자원을 발굴해 냈다. 그러나 문화적인 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서점 운영자들은 이 책방에 대해 기대치를 낮춰달라고 당부했다. 이런 문화공간들이 오래 못 버티는 이유가 그 기대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박 센터장은 “사회적 기대가 종종 거대해지곤 하는데, 그걸 부응하지 못하면 잘 못하고 있다고 느껴 문 닫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는 대단한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는 곳이 아니라 즐겁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오래 꾸려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곳의 책들은 독립출판물이다 보니 주제와 내용이 다양한 것은 물론이고 크기나 제본 형태도 제각각이다. 독립출판물계의 베스트셀러부터 고등학교 동아리 학생들이 낸 책까지 책의 퀄리티 역시 천차만별이다. 다수가 좋아하는 책보다 내가 공감하고 감동받을 수 있는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내보일 때 ‘독립’이라는 단어를 붙이곤 한다. 문화적인 사회가 되려면 다양한 시장은 필수적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곳은 다양함이라는 가치가 돋보인다. 책이든 사람이든 공간을 채운 모든 것들이 소란스럽지 않고 담백한 이곳은 작지만 맛보기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공간으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글·사진= 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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