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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정치, 민심을 따라야- 이종훈(정치부장)

  • 기사입력 : 2019-09-17 20: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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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개봉한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은 세조 때의 조선시대판 여론조작 사건을 다루고 있다. 세조실록에 실린 40여 건의 기이한 이적현상을 모티브로 풍문을 조작하는 광대들이 한명회에 발탁돼 세조에 대한 미담을 만들어내면서 역사를 뒤바꾸는 이야기를 담았다. 쿠데타로 왕권을 빼앗은 세조는 정통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따라서 이적현상을 통해 성군으로 추앙받기 위한 여론조작이 필요했을 것이다. 광대들이 연출한 이적현상을 통해 진실을 감추려는 권력층의 야욕과 광대놀음에 춤을 추는 백성들의 모습은 60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하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08년 발생한 ‘광우병 괴담’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려 죽는다’는 괴담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100번이 넘게 열렸고, 그로 인한 사회적인 비용은 3조7000여억원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사태 때의 괴담은 국가의 정체성마저 흔들었다.

    괴담의 진앙은 대부분 인터넷 공간이다. 인터넷은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사실여부를 검증하기 어렵다. 또 선동적인 경우가 많아 빠르게 확산된다. 더욱이 조작 수단도 다양해지고 있다. 기계로 여론을 조작할 수 있어 힘들게 광대를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국민 80%가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하다 보니 ‘실시간 검색어’(실검) 순위로 1시간이면 여론도 바꿀 수 있다. 최근 조국 법무장관을 둘러싼 ‘실검 전쟁’에서 드러났듯이 특정 세력이 순식간에 인터넷 여론을 왜곡할 수 있는 이른바 ‘디지털 여론조작 시대’이다. 게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극단적으로 세력화되면서 사회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왜곡된 여론을 정치인들은 ‘민심’이라며 입맛에 맞게 악용하고 있다. 여론과 민심은 차이가 크다. 사전적 의미의 여론은 사회대중의 공통된 의견이다. 민심은 백성의 마음, 즉 민정(民情)이다. 여론은 감성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 왜곡되거나 조작될 우려가 높고 또 포퓰리즘적 성격이 강해 해프닝으로 끝난 사례도 많다. 반면에 민심은 이성에 기초하다 보니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이라고 한다. 백성의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과 같다는 뜻으로, 백성의 마음을 저버릴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정치는 여론을 좇기보다는 민심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일반의지’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여론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제기한 루소는 ‘우리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희망이 일반의지’라고 했다. 일반의지는 시민 각자가 이기심을 배제하고 전체의 선을 생각할 때 모아지는 의지를 말하는데, 정치인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양심적인 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해 국가정책에 반영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민심을 듣지 못하고, 일반의지를 외면하는 나쁜 정부나 사회가 존재한다. 그러면 여론몰이로 진실을 감추는 현재는 어떤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은 여론 조작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모습을 통해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민심은 왜곡되고 감춰진 진실을 결국 알아낸다. 그것이 역사가 주는 가르침이다. 정치는 민심을 따라야 한다.

    이종훈(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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