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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함안 가야리 ‘사적 지정’ 의미- 김호철(함안의령본부장·차장)

  • 기사입력 : 2019-09-08 20: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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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청이 함안 ‘가야리 유적’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난달 26일 지정 예고했다. 문화재위원회는 매월 1회 열리는데 9월은 무리가 있어 늦어도 10월에 국가 사적 지정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가야리 유적은 함안공설운동장을 지나 함안연꽃테마파크 옆 아라가야 왕궁지로 현재 기초 발굴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로 볼 때 가야리 유적의 생성 시기는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부터 6세기에 해당된다. 국가 사적 지정 이후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되면 가야리 유적 규모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가야리 유적은 400여년 전인 1587년 함안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한 ‘함주지(咸州誌)’ 등 고문헌과 일제강점기의 고적조사보고서에서 아라가야 왕궁지로 기록돼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라가야(안라국·42~561년)는 42년부터 400년까지 구야국과 함께 ‘전기 가야연맹’의 양대 세력이었다. 전기 가야연맹은 400년 초 고구려의 역습으로 해체되고 후기 가야연맹이 고령지역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5세기 후반에 형성됐다. 아라가야는 대가야의 남서부지역의 중심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백제는 531년 아라가야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이후 고구려·백제·신라의 다툼 속에 554년 신라가 관산성전투에서 백제를 이겨 가야 소국들에 대한 병합에 나섰고, 아라가야는 561년 2월 신라에 항복해 패망했다.

    지금까지 아라가야의 역사는 결정적 유적들이 발견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못했다. 이번 가야리 유적 국가 사적 지정은 아라가야의 실체와 위상을 본격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보다 더 세밀하게 궁금증을 높일 수 있는 ‘숨은 역사 찾기’가 가능해졌다. 함안군 관계자는 “금관가야, 대가야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고구려, 백제, 신라, 왜(倭)와 활발히 교류했던 아라가야를 재조명해 가야사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가야리 유적 사적 지정은 말이산고분군, 성산산성에 이은 함안의 세 번째 사적이 나온 것으로 역사문화도시에 대한 군민의 자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아라가야를 통한 가야사 정립과 연구는 함안 말이산고분군을 비롯한 경남·경북 7개 고분군의 202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큰 역할도 기대된다.

    가야리 유적 발굴은 국비와 도비 등 100억원 이상 지원될 것으로 추산되는 데다, 아라가야의 체계적 연구·개발로 함안지역의 특화된 역사문화 연계 관광을 발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이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조근제 함안군수는 지난달 19일 “함안을 경남의 경주로 만들자”고 처음 언급하면서 역사문화관광도시로서 함안의 ‘빅픽처(큰 그림)’를 내비쳤다. 지리적으로 경남의 한가운데 위치한 함안에서 요원한 비전은 아닌 듯하다.

    김호철(함안의령본부장·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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