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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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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민창홍(시인)

  • 기사입력 : 2019-09-05 20: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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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경제무역 보복 조치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정말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은 약 35년 동안 벌어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로 인하여 생긴 치유되지 않은 고통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강제 동원된 위안부, 징용피해자에 대한 깊은 반성이나 사과 없이 망언을 일삼는 태도가 우리의 감정을 들끓게 한다. 또 강제 노역에 시달린 사람들에 대한 보상도 외면하고 있다. 일련의 일들은 모두가 광복 직후 친일청산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데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냉전시대의 국제관계로 인하여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실타래 속에 함께 있는 중국과도 사드 문제로 인하여 한동안 소원해졌고,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까지 겹쳐서 동북아 3개국이 묘하게 꼬여 가는 느낌이다. 국제정세나 정치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른다. 다만 과거의 일들을 잘 정리하고 새롭게 미래를 설계하는 가까운 이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가져본다.

    하얼빈역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에서 안 의사가 육필로 쓴 동양평화론 원본을 보게 되었다. 형 집행으로 완성되지 못한 동양평화론은 아직도 유효한 것 같았다. 일본은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정책을 개변해야 하고, 일본이 빼앗은 대련 여순을 중국에 돌려주며 개방항구로 만들고, 한중일 삼국 평화회의를 조직하여 동양평화를 도모하고, 여순에 공동은행을 설립하여 삼국이 통용하는 화폐를 발행하고, 동북아 3국 공동평화군 창설 등의 기본 관점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오늘날 유럽연합 형태의 한중일 평화체제를 구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안 의사의 대형 동상이 서 있는 입구에서 잠시 묵상하며 기도를 하고 기념관을 돌아보는 내내 짧은 생애가 남긴 커다란 족적이 먹먹하게 다가왔다. 당시 일제의 삼엄한 감시 아래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권총으로 저격한, 전 세계가 놀란 이 일을 나는 수업 시간에 배운 기억을 더듬으며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안 의사의 의거를 칭송하는 전문이며, 옥중에서 썼다는 표구된 글씨들, 자식의 죽음 앞에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죽으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어머니의 사진, 불공정한 재판 속에서도 이토 히로부미의 죄를 열거하며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한 내용들, 다시금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정부나 사회단체에서 참뜻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면서 역사의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나도 오래전부터 계획한 동북 3성을 여행하면서 그 의미를 새롭게 하고자 했다. 집안시 밭 가운데 우뚝 솟은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오랜 세월 비바람과 마주하며 마모되고 희미하게 남은 글자들을 보았다. 일본은 이 비문을 가지고 역사를 왜곡하고,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만주라고 불리는 이곳, 심양, 집안, 장춘, 이도백하, 하얼빈을 여행하면서 왠지 우리의 정서가 배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가 남아 있고 일제강점기에는 애국지사가 독립을 위해 활동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한중일의 복잡한 감정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고속열차는 하얼빈에서 심양을 향해 만주 벌판을 달리고 있다. 안 의사가 꿈꾸던 동양평화를 되새기게 한다.

    민창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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