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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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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근린(近隣)과 선린(善隣)- 심종철(경남은행 리스크관리본부장)

  • 기사입력 : 2019-09-03 20: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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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무공은 일본을 일컬어 ‘수(讐)’라 하였다. 수(讐)는 원수(怨讐)를 일컫는 말이다. 임진왜란이 막바지에 이른 노량해전 하루 전, 마지막 전투를 앞둔 충무공은 하늘에 고했다. ‘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讐若除 死卽無憾)’, 이 원수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결의에 찬 맹세였다. 전란의 참극을 목도하고 그 중심에서 참혹한 전쟁을 직접 이끌었던 충무공의 고뇌와 분노는 4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역사의 교훈으로 뭇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전한다.

    오래된 얘기지만 조금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서기 663년 백제의 부흥군을 돕기 위해 왜(倭)는 이 땅에 2만7000명의 군대를 파병했다. 우리 역사에서 가르치지 않는 백강전투 얘기다. 선뜻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당시 백제는 이미 수도가 함락되고 왕이 사로잡혀 패망한 상태인데도 백제 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해 왜(倭)가 대군을 파병한 점이다. 신라와 당, 백제와 왜 간의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대전인 백강전투는 왜군 1만여명이 죽는 큰 패배를 끝으로 나·당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왜(倭)는 우리에게 파병 시기와 규모만큼의 두터운 신뢰를 지닌 선린(善隣)이기도 하였다. 이렇듯 반만 년을 이어 내려오는 동안 일본은 우리에게 늘 두 얼굴의 이웃이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이라는 뜻의 근린(近隣) 관계는 선택적 사항이 아닌 확정적으로 주어지는 것인 반면 선린(善隣) 관계는 국가 간의 상호 노력에 의해 후행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로 양국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러한 때 양국간의 우호와 갈등관계를 구분 짓는 변곡점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힘의 균형추(均衡錘)다. 역사적으로 힘의 균형추가 우리에게 있을 때 일본은 우리에게 선린이었지만 힘의 균형추가 일본으로 넘어간 시점이면 그들은 늘 씻을 수 없는 역사적 상처를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근린간의 우호관계는 국가의 힘이 바탕이 될 때 한해 주어지는 ‘조건부 보증서’와 같다. 언제 돌아설지 모르는 이웃들을 사면에 둔 우리가 힘을 길러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이다.

    심종철(경남은행 리스크관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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