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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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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살아있음이 축복이며 감사임을- 황수빈(작가)

  • 기사입력 : 2019-08-29 20: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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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 캠핑을 다녀왔다. 가만 있어도 땀이 쏟아지는 무더위. 텐트 치는 동안 옷이 다 젖어 버렸다.

    바람이 불어왔다. 한 줌 바람이 이렇게 시원할 줄이야. 2L 물병이 금세 비었다. 땀 흘리며 마시는 물은 꿀맛이었다. 한 줌 바람과 한 잔 물.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했다.

    아이가 뇌전증 투병을 시작한 후로 정신없이 살았다. 매일 밤 찾아오는 발작을 지켜보며 밤을 지새웠다. 입술이 파래지는 아이 곁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영특했던 내 아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걱정과 불안은 원망과 분노를 낳았다. 감사할 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초라한 삶이었다.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은 만원이었고, 특유의 음산한 공기에 주눅이 들었다. 대기 의자에 앉아 축 늘어진 아이를 안은 채 차례를 기다렸다.

    응급실 밖에 또 다른 구급차가 도착했다. 얼른 내 손으로 아이 눈을 가렸다.

    구급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피투성이에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의료진이 달려오고 커튼이 쳐졌다. 커튼 안에서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의사의 사망선고가 이어졌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장면이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순식간에 벌어졌다.

    연락을 받은 가족들이 울면서 달려왔다. 슬픔이 응급실에 번졌다.

    내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보았다. 몽롱한 상태로 늘어져 있었다. 아이 코에다 손을 갖다 댔다. 옅은 숨을 고르게 쉬었다. 살아있다. 아이가 살아있다. 아이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충분했다. 살아있다는 자체로 감사했다.

    감사할 게 없는 삶이라 생각했지만, 살아 숨 쉬고 있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감사한 일이 생겨야만 감사하는 거라고 믿었다.

    삶이 축복임을 잠시 잊고 살았다. 지금, 여기, 살아있음이 축복이며 감사임을 가슴 깊이 담고 살아가려 한다.

    황수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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