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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돼지저금통에 버려진 동전을 보며- 김호철(문화체육부 차장)

  • 기사입력 : 2019-07-28 20: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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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 적 집에 있던 돼지저금통은 컸다. 부모님과 누나, 형님들은 동전이 생기는 대로 저금통에 넣었다. 큰 돼지저금통에 동전이 가득 차 더 이상 공간이 없을 땐 잔칫날 돼지 잡듯 어머니는 돼지저금통 배를 갈랐다. 돼지저금통을 잡고 나면 새 돼지저금통을 사다 놓았다. 덤으로 어린 우리들을 위한 새끼돼지저금통을 사오기도 했다. 동전 모으기는 가정 속 저축교육이었다.

    ▼1982년 핫도그는 50원 했다. 전자오락실 게임은 핫도그의 두 배인 100원 했다. 갤러그 게임 한 판이 핫도그보다 두 배 비쌌다. 당시 쓰임새 많은 동전을 쓰지 않고 저금통에 넣는 것은 초등학생으로서는 애가 탔다. 배를 가르기 전까지 쓰질 못한다. 당장 사 먹고 싶은 핫도그를 참아 가며 50원을 저축하는 것은 나름 ‘결심과 인내’가 있어야 했다. ‘결심과 인내’는 습관이 되고 쓸데없이 돈을 허비하지 않는 인성을 키웠다.

    ▼돼지저금통에 모인 동전은 2000년대 중반까지도 쓰임새가 많았던 것 같다. 지금보다 절반 가격 수준이었던 시내버스비와 공중전화비에, 100원 하는 커피자판기…. 1000원을 넘지 않는 사용처가 적지 않았다. 몇백원 때문에 돼지저금통을 턴 경우도 잦았다. 꽉 찬 돼지저금통 동전을 지폐로 바꾸기 위해 일부러 은행 갈 일은 없었다. 온 가족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소모했다. 1998년 IMF 때는 동전을 거의 발행하지 않아 수집 경쟁이 있었다. 특히 당시 발행된 500원짜리는 단 8000개 제작된 희소성으로 현재 50만원에서1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요즘 가정집에 저금통 보기가 어렵다. 저금통이 있더라도 동전을 넣어둔 채 방치하고 산다. 저금통 속 동전은 우리를 애타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귀찮은 존재처럼. 차마 버리기 아까워 저금통에 ‘버린다’는 느낌이다. 새로 나온 쪼그마한 10원 동전은 생길 때마다 갑갑하다. 동전이 모이면 조금 목돈이 될 수도 있지만 신용카드 사용으로 동전이 생기는 날도 드물다. 큰 돼지저금통은 배도 못 가르고 몇 년이고 이사 때마다 소리 내며 따라다닌다.

    김호철(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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