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06일 (금)
전체메뉴

[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다름, 여행의 또다른 이름

  • 기사입력 : 2019-07-24 21:33:02
  •   
  • ‘언니는 왜 여기(영국)까지 와서 한국남자랑 연애해요?’ 아직까지도 그때의 비아냥거리는 말투와 그녀의 옆에서 서있던 내가 그 이야기를 듣든 말든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확신에 차 있던 그 단어 하나하나가 귓가에 맴돈다.

    그 말을 나와 내 연인에게 했던 여자아이는 20대 초반에 막 대학교를 입학하고 어학연수를 떠나왔던 똑똑한 친구였다.

    어느날 그녀의 남자친구를 만났을 때, 그 친구에 대한 화는 동정과 연민으로 바뀌었다. 데리고 나온 남자는 영국인도 아니었으며 영어권 출신의 남자도 아니었다. 화를 참았던 내 스스로가 대견했고 수단과 목적으로서의 연애를 해야 한다며 똑 부러지게 말하는 그 어린 아이의 말에 느껴진 문화 사대주의도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일, 불쌍하다는 감정으로 ‘외국인 남자친구’를 사귄다며 자랑스러워하던 그녀와는 친해질 수도, 친해질 일도 없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아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아이.
    에티오피아의 연인.
    에티오피아의 연인.

    ‘너 너무 귀엽다, 영어는 할 줄 알아? 내가 영어도 가르쳐줄 수 있는데 연락처 좀 줄 수 있어?’ 처음 간 벨기에 와플 집 여자 직원이 내게 했던 말이다. 나는 그 자리를 불쾌해하면서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라는 공격적인 반응을 했다. 간단히 생각하면 기분 좋은 외국인의 호감표현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백인여성’ ‘귀엽다(보통 남자에게 잘 쓰지 않는 표현)’ ‘영어를 가르쳐준다’ 등의 말들은 내게 ‘인종차별’의 정황과 단어들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공격적인 반응을 카운터 위에서(실제 카운터가 손님을 내려보는 구조) 듣고 난 뒤, 그녀는 아니나 다를까 민망하다거나 실망스럽다거나 하는 반응은 아니었고, 여전히 놀리는 듯한 얼굴로 킥킥대고 있었다. ‘귀엽다’는 말은 실제로 엄청 귀여운 남자아이가 아닌 이상 이성적으로 여자가 다가올 때 남자에게 쓰지 않는다. ‘동양 남자’에겐 쓴다.

    ‘니하오~ 니하오~(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를 표현하는 듯한 몸짓을 하며)’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던 중, 패키지여행에 함께 참여하고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던 젊은 청년들, 훤칠하고 잘생긴 유럽남자들이었고, 그 뉘앙스에서 큰 불편함을 느낀 건 가이드와 나 정도였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동양인들에게 살갑게 인사하려는 젊은 청년들의 환대 정도로 생각했을까.

    웃으면서 일행들은 ‘중국인 아니에요, 한국사람이에요’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내가 속한 단체에 혹시나 누를 끼치는 일일 것 같아 참고 그 순간을 넘어갔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프랑스 사람들에게 우스운 제스처와 함께 ‘헬로, 헬로!’라 외친다면 그것은 또한 어떤 면에서도 매너 있는 인사법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니?’ 아마도 당시 어학연수를 하던 학원에서 ‘채식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프랑스 여자아이의 발언, 다수의 유럽 친구들이 ‘개식용’에 대해 알고 있었고 몰랐던 친구들은 경악의 얼굴로 그 수업 내 한국인들을 바라봤다. 몇 없던 한국 학생들 중 하나가 ‘자기도 그것은 정말 야만적이라 생각해’라는 대답을 했다.

    그때 나는 말을 끊고 발언했다. ‘프랑스에서는 말고기를 먹고 태어난 지 하루 된 송아지고기를 먹고 달팽이를 먹지 않니? 그거랑 무엇이 다른지 설명해 줄래?’ ‘야만적이라는 기준, 구역질이 난다는 표현은 반대로 내가 당신들한테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등등 날이 선 반응과 공격적인 어투로 그들에게 대항했다.

    한국인으로서 같이 한국인을 공격하던 한 여학생에게도 할 말을 다 했었다. 역사에 바탕한 문화적 차이에 높낮이를 매기는 행위야말로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는 진짜 세계인으로서 절대로 지양해야 하는 자세이다. 대관절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에티오피아 세 남자의 티 타임.
    에티오피아 세 남자의 티 타임.
    에티오피아의 코카콜라 자동차.
    에티오피아의 코카콜라 자동차.
    런던의 젊은이들.
    런던의 젊은이들.

    ‘영토 분쟁 때문에 불편한 관계에 있는 거 아냐?’ 또한 영국에서 수업시간에 시사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수업 내에 있는 한국인 학생들과 일본인 친구들에게 특별히 무겁지 않게 던져진 화두, 일본친구들은 언제나 그렇듯 ‘정치적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었고 한국 친구들은 그 상황에 역시나 마찰을 피하고 싶다는 얼굴로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각국의 입장이 있다’는 비겁한 양비론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물론 나는 가만 있지 않았다. ‘난 영토분쟁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어째서 내 것을 두고 싸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린 영토분쟁이 없다. 독도는 한국의 영토고 분쟁거리일 가치가 없는 일이다.’ 조용하게 발언했지만 차가웠던 문장들은 사실 한국 친구들한테 더 날카로이 향해 있었다.

    ‘너희는 일본 때문에 발전했던 거 아니야? 깔깔깔’ 다국적 친구들이 한데 모여 있던 술자리에서 누군가의 입에서 장난스럽게 나왔던 이야기를 일본 친구들은 그런 민감한 이야기들을 언제나 어색하면서 예의바른 웃음으로 넘기려고 했었다. 더 화가 나는 모습은 일본인들과 같은 스탠스로 이야기를 다른 화제로 돌리려는 한국친구들이었다.

    민감한 이야기들을 피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는지도 모르나 나는 넘길 수 없었다. 공격적인 말이 아니라 공격적인 욕이 나왔다. 식민지 시절에 발전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한국 친구에게 먼저 욕이 나왔고 그 다음은 그 정도 역사인식으로 나와 같이 술자리에서 발언을 한 외국인 친구에게 영어로 욕이 나왔다.

    여행은 내가 원래 있던 곳, 내 생활권을 벗어나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면서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편견 없는 존엄을 가장 직접적으로 배우게 되는 것 또한 다름을 만나는 것이 일인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가르침 중 하나다. 이해한다. 하고 싶은 말이라고 다 할 수 없는 상황이 허다하고 참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참아야 할 때가 있다.

    허나, 여행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긍지나 한국인으로서 훼손되지 말아야 할 민족적 역사적 가치들이 누군가로부터 침범당한다거나 국적이나 인종으로 차별을 받게 되었을 때만큼은 한 번도 그냥 넘어간 적이 없다는 점이다.

    차이와 차별은 다르고, 문화에 높낮이는 없다. 역사는 지금 세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겨진 세포의 기록 같은 것이며 그런 ‘나’ 라는 사람의 지금을 만든 대한민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질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최대한 올바른 역사를 설명하려 했다.

    나는 33개국 혹은 34개국, 자치행정구역을 국가와 분리한다면 그것보다도 더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멀티 컬처의 미덕은 존중받아야하고 각 국가와 국민에 대한, 혹은 여행지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은 중요하다.

    잊지 말자, 그만큼 나는 그곳에 ‘한국인’으로 서있어야 함도 중요하다. 하물며 나는 국가적으로 신뢰와 존중의 자세를 보여주지 않고 여전히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한국과 한국인을 대하는 최근의 일본, 내가 여행한 수많은 나라 중 몇 번이나 간 곳이 일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도 일본에 대한 글은 쓸 생각이 없다는 것, 새로운 일본 여행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밝히는 바이다.

    메인이미지

    △김강(리버맨)

    △1983년 마산 출생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창원대 사회복지대학원 재학중

    △카페 '버스텀 이노르' 대표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