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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구한말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구국혼- 하강돈((사)비화가야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 2019-07-08 20: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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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 자락에 구한말 의병장으로 창의해 왜적과 싸우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국하신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의 생가터에 기념관이 우뚝 세워져 있다.

    지난 4월 초에 서울 도봉구에 살고계신 왕산 선생의 증손인 허벽 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우리 연구소에서 3.1만세운동 100주년을 기하여 독립운동 사료를 수집하던 차 왕산기념관을 꼭 방문하고 싶다는 건의를 했던 터에 경북 구미지역에서 최초로 3.1운동이 일어난 4월 8일에 기념관에서 3.1운동 재현행사를 거행하는 데 초대받아 참석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왕산 선생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다. 15년 전 ‘일본왕가의 뿌리는 가야왕족’이라는 논저를 펴낸 고 최승규 선배님과의 마지막 좌담회 시 유훈처럼 남기신 세 가지 과제 가운데 “한일합방 시 구한말의 의병장이셨던 왕산 선생의 활동상을 재조명해 암흑기의 민족의식과 한일관계사가 어떠했는지를 꼭 연구해보라”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산기념관에 들어서니 오후 3시부터 개최되는 3.1운동 재현행사 리허설로 분주하고, 묘역 입구에 선생의 유허비가 방문객을 안내한다.

    허위 선생은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났다. 을미년(1895) 일제가 궁궐을 침입해 황후를 살해한 을미사변을 당하자 1896년 의병을 일으켜 김천장날을 기해 봉기했다. 서울 공격을 위해 의병을 이끌고 김천에 이르렀을 때 고종의 밀서를 받고 자진해산했다. 선생은 “나라와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 죽지않고 어이하랴. 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의 주권도 회복하지 못했으니 충성도 못하고 효도도 못한 몸이니 죽은들 어이 눈을 감으랴”라는 유서를 남기고 순국하셨다. 대구 달성공원에 순국기념비가 있고 서울청량리에서 동대문까지의 길을 왕산로라고 부른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최근 일본정부가 뜬금없이 강제징용배상문제 대법원 판결에 불복, 경제전쟁을 선언하니 정말 어이가 없다. 아배 정부는 차제에 과거 이웃나라들을 침략해 수백만의 인류와 독립 애국지사들을 살륙한 대죄를 진정으로 반성, 사과하고 인류공영의 길로 나아가기 바란다.

    하강돈((사)비화가야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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