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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김일석 진주시새마을회장·청실회 총재

‘인생 쓴맛’ 거울삼아 ‘나눔 단맛’ 전합니다

  • 기사입력 : 2019-07-04 21: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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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소년가장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인생의 쓴맛이 그가 자수성가하는 밑거름이 됐다.

    신파소설 같은 삶을 살아온 그는 피눈물 나게 어려울 당시 자신의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베풀어 준 이웃의 은혜가 뼛속 깊이 각인될 정도로 기억에 남았고, 훗날 남을 돕는 일에 나서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고 한다.

    대부분의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먹고살 만큼 살림을 일궈놓고 나서도 이웃을 위해 선뜻 자기 것을 내놓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는 수십년간 표나지 않게 많이 내놨다. 진주시새마을회장과 대한민국 청실회 총재 등 많은 봉사단체에 몸담고 있는 김일석(58)씨.

    그는 물론 그의 형제들 모두가 어려운 시절 받았던 이웃의 도움에 보답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일석 청실회 총재가 캄보디아 해외 봉사활동 중 현지 어린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일석 청실회 총재가 캄보디아 해외 봉사활동 중 현지 어린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 회장은 그렇게 큰 부자는 아니다. 하지만 이미 20여년 전부터 알게 모르게 이웃을 돕는 일에 물심양면 많은 기여를 해왔다. 지금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 회장의 어려운 이웃돕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김 회장의 봉사활동

    2012년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2007년부터 장애인 후원활동을 시작, 현재 진주시장애인총연합회 후원회장을 맡고 있고, 경남지역의 저소득층 난방을 지원하는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 진주지부장, 시위 집회의 선진화 활동을 위한 진주경찰서 시위집회 시민 참관단 위원장, 진주지역 자활센터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단체들에 몸담은 것은 모두 10년이 넘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2년간, 2018년부터 현재까지 진주시 새마을회 회장을 맡고 있고,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빈곤과 질병으로부터 고통받는 아이들을 도와 그들이 꿈과 희망을 갖도록 도와주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결성, 초대 경남서부후원회장을 맡았고, 2017년부터 진주 목 문화 사랑방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년가장으로 성장

    그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에피소드는 콧잔등이 시큰한 소설로 엮어도 1권으로는 부족할 듯하다. 그 시절 모두가 그랬듯이 넉넉지 못한 집의 4녀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나 근근이 진주기계공고를 졸업했다. 마산의 조선소에 취업해 2년간 근무했는데, 이때 부모님의 병환으로 고향 진주로 돌아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22세 되던 해에 두 분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누나들도 모두 출가한 상태라 당시 고등학생과 중학생인 남동생 두 명을 책임지는 소년가장이 됐다.

    가족을 부양할 사람이라고 병역까지 면제받았다. 당장 남자 3명의 밥 해줄 사람이 없어, 누나들의 권유로 23살의 나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결혼 당시 시계 하나도 마련하지 못하고 양복 한 벌, 양장 한 벌로 결혼식을 올리고 월세 5만원짜리 방 두 칸에서 4명이 함께 사는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결혼식 때 변변한 패물 하나 해주지 못하고, 없는 살림에 동생들 뒷바라지까지 시킨 아내에게는 내내 미안한 마음이다.

    다행히 동생 두 명이 공부를 잘해 전액 장학금으로 학비를 충당해 고등학교까지는 학비 걱정 없이 지냈다.

    큰동생은 등록금이 저렴한 경상대학교 사범대학에 진학하고, 막냇동생은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학비와 생활비 걱정이 닥쳤다.

    그런데 막내는 학교의 추천으로 한의원을 하는 뜻있는 분의 도움을 받아 사회대학 수석졸업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당시 그들 형제는 장학금을 선뜻 내줘 학업을 마치게 해준 그 고마움을 뼛속 깊이 새기면서, 훗날 꼭 남을 돕는 사회봉사 활동을 하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막내는 일찍이 서울에서 창업해 상당히 규모 있는 회사를 경영할 정도가 됐다. 어린시절의 약속과 다짐을 지키기 위해 아주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2008년 마중물 장학회를 만들었다. 그후 11년 동안 거르지 않고 매년 진주지역 고등학생 30명에게 각각 300만원씩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 회장과 동생은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 “성인으로 성장해 너희들과 같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눔을 실천해 주면 고맙겠다”는 뜻을 꼭 전한다고 한다. 김 회장은 고교시절 셋방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돼 사경을 헤매기도 했던 그 막내가 지금은 내로라하는 사회인으로 성장해 남을 돕고 있다며 흐뭇해한다.

    오토바이에 태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추운 겨울날, 등 뒤에 꼭 붙어서 “다음에 내가 돈 많이 벌어서 형님 잘살게 도와줄게. 고생이 되더라도 참아”라고 말한 막내가 기특해 밤새도록 울었다고 김 회장은 회고한다.

    그 막내가 약속을 지켜, 김 회장은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며 경제적으로 윤택해졌고, 남을 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청실회에 몸담아

    대한민국 청실회 39대 총재를 맡고 있다. 진주에서 태어난 순수 토종 봉사단체인 청실회에 1999년 가입해 그동안 충효분과장, 진주 청실회 회장 등을 거쳤다. 그가 청실회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는 것은 청실회에 몸담으면서 많은 분야에서 체계적으로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역사회 발전과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취지로 설립된 청실회가 충효사상과 자주 자립 협동정신에 근본이념을 두고 있는 것이 자신의 가치관과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총재 취임 후 각 지구 회원들이 맘껏 봉사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국내는 물론 해외로 진출해 지구 확충과 회원 배가운동을 펼치면서 청실회가 국제적인 봉사단체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심혈을 쏟고 있다. 현재 국내와 해외지구 등 20개회가 활동하고 있으며, 부부가 함께하는 봉사단체로 자리매김했다.

    ◆두 차례의 진주시새마을회 회장

    김 회장의 새마을 사랑과 새마을 조직을 통한 지역사회 기여 정신은 남다르다.

    그는 지난 2013년부터 2014년까지 2년 동안 진주시새마을회 회장을 맡았다. 당시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심하다, 일단 쓰레기 없는 깨끗한 진주 만들기와 30년 후의 미래 관광 숲 조성 등의 정책을 세워 추진했다. 하지만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임기를 마쳤다.

    못다 이룬 꿈을 이뤄보라는 권유가 있어서 다시 2018년부터 새마을회 수장을 맡았다고 한다. 첫 번째 임기 때 세웠던 계획의 실행을 위해 지금도 동분서주한다.

    ◆인생관, 해보고 싶은 일

    김 회장은 어렵고 힘들게 살아본 사람이 남의 어려움도 안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실은 우리 가족들은 가족에게 쓰는 돈은 벌벌 떨면서 남을 위해서는 아끼지 않는다고 푸념도 많이 한다. 하지만 저는 항상 내 주위가 따뜻하고 행복해야 좋은 사회가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내 주위에 어려운 이웃이 있다면 형편이 조금 나은 내가 앞장서서 지원하고 돕는 일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 회장은 진주는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돼 있는 분들이 참 많다고 밝힌다. 그래서 진주는 행복이 가득한 도시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람들과 힘을 합쳐 어두운 곳을 밝히는 일을 해 나가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부동산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진주를 최고의 관광도시로 만들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미래 50년을 내다보는 도시계획을 세워 진주가 세계에서 최고 멋진, 꼭 한 번 방문해야 하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강진태 기자 kangjt@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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