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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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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답청(踏靑)- 성선경 (시인)

  • 기사입력 : 2019-06-27 20: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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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오래 전에 답청(踏靑)이란 시를 쓴 적이 있다.

    답청이란 봄풀을 밟는 일이다. 이 여름에 웬 봄 이야기를 하는지? 하시는 분들도 많겠다.

    내가 쓴 ‘답청(踏靑)’이란 시의 전문(全文)을 소개하면 이렇다.

    ‘내가 저 봄풀로 가네/봄풀로 가서 내가 푸르네/내가 푸르니 저 봄풀들 내게로 오네/내게로 와서 봄꿈 푸르네/아주 춘분(春分)이나 청명(淸明)으로 흔들리며/내가 네게로 가서 푸르게 봄풀이 되고/네가 내게로 와서 푸르게 봄꿈이 되고/내 발목이/네 발목이/우뚝우뚝 힘쓰는 봄/곡우(穀雨) 가랑비 촉촉이 젖으며 답청/너도 봄 푸르고 나도 봄 푸르네/내 발길 네 이마/푸르네 푸르네.’

    답청은 봄풀을 밟는 일이나 봄풀을 짓밟는 일은 아니다. 겨우내 얼었던 보리밭을 밟듯이 들뜨지 말고 잘 자라라고 봄풀 곁으로 우리가 다가가는 일이다. ‘내가 네게로 가서 푸르게 봄풀이 되’는 일이다.

    나는 최근에 ‘아이야! 저기 솜사탕 하나 집어줄까?’란 시집을 내고나서 귀한 선물을 받았다. 나와 연락이 닿는 몇 안 되는 고등학교 후배가 귀한 글귀 한 점을 선물로 가져왔다. 김해에서 활동하시는 박범지 선생의 글로 써진 ‘오유지족(吾唯知足)’ 이란 글이다.

    후배가 나를 찾아준 것만으로도 나는 황감해 어쩔 줄 모르겠는데 귀한 글까지 선물로 받고 보니 마음을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오유지족(吾唯知足) 이란 글은 석가모니(釋迦牟尼)의 마지막 가르침을 담은 유교경(遺敎經)에는 나오는 구절(句節)에서 유래(由來)한 것으로 ‘스스로 오직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안다’ 라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말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안분편(安分篇)에 ‘知足者는 貧賤亦樂(지족자 빈천역락)이요, 不知足者는 富貴亦憂(부지족자 부귀역우)니라’ 말이 나온다.

    만족(滿足)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하거나 천(賤)하더라도 또한 즐겁게 살고,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富裕)하거나 귀(貴)하더라도 역시(亦是) 근심스럽다. 라는 글도 그중 하나다.

    나는 내 후배가 전해준 오유지족(吾唯知足) 이란 글을 ‘나와 당신은 스스로 제 분수를 지켜 만족함을 안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내 서재(書齋) 앞에다 걸어두고 마음에 새긴다.

    나도 문단에 얼굴을 내민 지 이미 삼십 년을 훌쩍 넘었다. 나이도 이제 이순(耳順)에 들었고 공직에서 물러난 지도 삼사 년을 넘었다.

    그래 이제 이만하면 족(足)하지 않느냐? 이젠 말 한 마디에도 덕(德)을 붙이고 발자국 한 걸음에도 덕(德)을 붙여야 할 일이다. 그래야 이것이 진정한 답청(踏靑)이 아니겠느냐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답청(踏靑)이란 ‘내가 네게로 가서 푸르게 봄풀이 되’는 일이다. ‘내가 네게로 가서 푸르게 봄풀이 되고/네가 내게로 와서 푸르게 봄꿈이 되’는 일이다. ‘너도 봄 푸르고 나도 봄 푸르’게 되는 일이다.

    나는 후배에게 오유지족(吾唯知足)이란 글귀를 받아들고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어떻게 늙을 것인가? 나는 정말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하고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성선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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