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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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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92) 제24화 마법의 돌 92

‘아들이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 기사입력 : 2019-05-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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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영은 정식이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벌써 일 년째 산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잠자리가 낯선 탓일까. 셋이 나란히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잠을 잤고, 산짐승 때문에 선잠을 잤다. 정식의 말대로 산짐승이 집 뒤와 마당까지 내려왔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늦게 초옥에서 출발했다. 아들과 헤어지는 것이 서운했는지 류순영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이 붉다. 이재영도 걸음이 무거웠다.

    진주에 도착하자 촉석루와 남강을 보았다. 촉석루에서 보는 남강은 수량이 많았다. 그 옛날 논개라는 기생이 왜장을 끌어안고 뛰어들었다는 누각이고 강이다. 성곽은 허물어지고 누각도 지붕의 기와가 무너져 가고 있다.

    우울하여 진주를 구경하고 싶지 않았다.

    진주에서 하룻밤을 자고 대구로 돌아왔다. 류순영이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특별한 병은 없었으나 의욕이 없어졌다.

    해가 바뀌었다. 1945년이었다. 전쟁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아들 정식이 진주경찰서에서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은 3월이 되었을 때였다. 이재영은 부랴부랴 진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가 진주경찰서에 도착했을 때는 부산으로 떠난 뒤였고, 부산에 이르자 일본군 훈련소로 끌려갔다고 했다.

    ‘아아 기어이 학도병으로 끌려가는가?’

    이재영은 기차를 타고 대구로 돌아오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류순영은 정식이 학도병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자 통곡을 하고 울었다. 집안 분위기는 더욱 침울했다. 이튿날부터 그녀는 팔공산에 있는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들이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4월이 되자 독일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일본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재영도 깜짝 놀랐다. 독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지 못했으나 유럽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소련과 전쟁을 하고 미국과 영국과도 전쟁을 하여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고 생각했었다. 활동사진으로 뉴스를 보았는데 독일군의 위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런 독일이 미영연합군에 항복했다는 것이다. 결사항전을 하자, 전 국민이 옥쇄하자는 벽보가 곳곳에 나붙었다.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일본은 소련군 때문에 더욱 불안했다.

    경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장사가 전혀 되지 않았다. 쌀은 더욱 부족했다. 이상하게 해마다 흉년이 들어 2000만 석을 수확하던 것이 1천만 석으로 줄어들었다. 일본군은 군량에 충당하기 위해 600만 석을 강제로 공출해 갔다.

    “조선인들은 풀과 나무뿌리만 먹어야 한다.”

    조선총독부의 재무국장이 한탄했다. 식량부족이 심각했다. 조선인들은 콩깻묵 같은 것을 먹으면서 연명했다.

    6월이 되자 정식에게서 편지 한 통이 왔다. ‘부모님 전 상서…’라고 편지가 시작되었다. 정식은 남방의 버마전선에 투입되었으나 건강하게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류순영은 그 편지를 읽고 또 울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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