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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정신분열의 사회적 의미- 백승진(경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9-05-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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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니야! 아니라고. 길거리를 버젓이 활보하는 악당들보단 덜 미쳤다고.” 밀로시 포르만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맥머피가 정신병원에는 동료들에게 하는 말이다. 감옥소에서 정신병원으로 이송된 맥머피는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정신에 이상이 있어 이곳에 감금되어 있기보다는 병원에 감금되어 있기 때문에 정신 이상자로 취급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병원이 시스템에 의해 통제되고, 그 시스템은 간호사 랫체드의 권력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이다. 랫체드는 두려움의 대상이며 그녀의 말은 곧 법이다. 맥머피는 랫체드라는 권력에 도전하기로 하면서 그녀를 죽이려 하지만, 오히려 랫체드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맥머피를 뇌수술을 통해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린다. 맥머피는 자신의 말대로 병원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권력에 저항을 했던 것이다.

    ‘정신분열’, 즉 ‘미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1960년대에 미국 대학생들은 한 손에는 비틀스의 노래를, 또 다른 한 손에는 영국의 정신병학자 R. D. 랭의 책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혼란스러웠던 시대의 탈출구를 비틀스와 랭에서 찾아보려 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랭에게 정신분열증이란 단순히 정신에 관계된 메커니즘이 제 구실을 못 하고 있다는 개념이 아니며 정신분열증이 반드시 일종의 병일 필요가 없다는 기본 전제를 내세우고 있다. 랭이 <분열된 자아>(1960)와 <경험의 정치학>(1967)을 통해 보여준 정신분열증에 대한 개념은 개인의 존재를 위협하는 잘못된 가치 개념의 사회현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한 개인이 고안해낸 특수한 전략이다. 즉, 정신분열의 경험은 건전하지 못한 사회구조에서 존재의 한 방식으로 한 개인이 선택한 삶의 방식인 것이다.

    랭은 <분열된 자아>에서 존재의 위험성을 느끼는 사람은 ‘자기방어시스템’을 만들면서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자신을 경험하게 된다고 설명하는데, 이런 분열된 자아의 경험은 존재의 안정성에 대한 근본적 결함을 보강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시스템인 것이다. <경험의 정치학>에서는 정신분열에 대한 개념을 ‘정상인’과 ‘비정상인’ 개념에 연관시켜 이야기하고 있는데, 랭에 의하면 모든 사회 현상 자체가 일단 진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현대인은 ‘거짓 사건’에 둘러 싸여 있으며 우리가 부르는 사회 현실은 ‘거짓 현실’, ‘환상’, ‘환각’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거짓 현실에서 정상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상인이 아닐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거짓 현실에서 비정상적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랭은 정신분열증을 “거짓 사회 현실에 적응하지 않기 위한 성공적 시도”라 말하고 있다.

    정신분열증이란 소위 정상이라 불리는 다수가 소위 비정상인 사람들에게 붙인 일종의 ‘호칭’으로서 정신분열증이란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정신분열이라는 명칭은 ‘정치적 사건’인 것이다. 즈비그니에프 코토비츠는 “유태인, 마녀, 동성애자, 공산주의자, 정신병자와 같은 단어들은 서로 호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권력을 쥐고 있는 기득권층이 기존의 질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유태인, 마녀, 동성애자, 공산주의자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듯이 ‘정신분열증’이란 상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랭이 정신분열증을 미화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현대인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정신분열의 사회적 의미를 보여주려는 데 있다.

    “누가 진짜 미친놈인지 보여주자고”라고 외치는 맥머피처럼 사회를 향해 가끔 미친 소리 한마디씩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백승진 (경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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